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엄마 세대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 작품으로 2001년 개봉 당시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일은 잘하지만 세련된 커리어우먼의 전형적인 태도를 갖추지 않았고 연애를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해 서툴고 엉뚱한 해프닝에 엮이는 서른 둘의 브리짓 존스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여자가 서른 살이 넘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말하던 시절 ‘골드 미스’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올드 미스 다이어리’ ‘내 이름은 김삼순’ 등의 드라마가 제작되며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도 ‘브리짓 존스’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섹스 앤 더 시티(1998~2004)’를 보고 ‘쿨하고 팬시한 미국 언니들’의 삶을 동경했던 MZ세대는 ‘브리짓 존스’의 ‘영국 언니’를 통해 보다 현실적인 고민을 하면서 울고 웃었고 엄마 세대는 “너희는 저렇게 살아라”며 딸들을 응원했다.
9년 만에 네 번째 시리즈로 돌아온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초등학생 남매를 둔 싱글맘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 분)의 육아와 일, 중년의 연애와 사랑을 다뤘다. 여전히 솔직하고 무해한 그녀의 표정에 관객들은 무장 해제되고 존스가 ‘흑역사’를 만들어 갈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소소하고 소박한 영국식 로코의 미덕을 살린 ‘진정한 클래식 로코의 귀환’이자 ‘브리짓 존스의 러브 액추얼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존스가 아이들의 친구로부터 “너희 할머니 왜 잠옷을 입고 나왔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시작되는 영화는 존스 앞에 어떤 ‘굴욕의 흑역사’가 펼쳐질지 맛보기로 보여준다. 육아에 지친 존스에게 주치의는 다시 일을 할 것을 권하고 친구들은 데이팅앱을 들이민다. 방송국 PD로 복귀한 존스는 매력적인 연하남 록스터를 운명처럼 만나고 ‘섹시하고 로맨틱한 수영장 신’은 중년의 로맨스도 20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브리짓 존스’ 시리즈의 반전이 시작된다. 연하남은 연락 두절되고 존스는 답장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메시지를 보내며 잠수 이별을 ‘확인 사살’한다. 그리고 며칠 후 돌아온 남친에게 중년의 존스는 지혜롭게 이별을 고한다. 여전히 엉뚱하고 순수하지만 나이와 함께 현명해진 그에게서 세월의 가치를 음미하게 된다.
연하남과의 연애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존스를 기다리는 또 다른 챕터가 있었으니 바로 자신도 모른 채 스며든 ‘사랑’이다. 존스는 아이들에게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통제하던 윌리커 선생님(치웨텔 에지오포 분)를 “파시스트”라며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윌리커는 아빠를 잃은 아이들에게 어른스러운 조언을 해주고 존스의 엉뚱한 모습을 이상하게 보지 않으며 서서히 존스에게 스며든다. 이들의 사랑이 밋밋한 것만은 아니다. ‘고백의 정석’도 보여준다. 흰 눈 펑펑 내리는 날 윌리커는 존스에게 뉴턴의 2·3법칙을 빌어 매우 ‘T스러운’ 고백을 한다. 또 다른 로코의 클래식 ‘러브 액추얼리’의 ‘카드 고백’을 떠올리게 하며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임을 알린다. 1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