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외교 정책을 공개 비판한 오스카르 아리아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미국 비자 취소 처분을 받았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오스카르 아리아스(84)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이날 산호세에 있는 사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제 미국 비자가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린다”며 “트럼프 정부는 불행히도 독재 정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아리아스 전 대통령은 “어차피 미국 여행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제게 아무런 영향은 없다”면서 “구체적인 취소 이유까지는 알지 못하며, 코스타리카 정부가 개입한 것 같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갑작스러운 통보를 두고 현지 매체들은 트럼프 미 대통령을 겨냥한 아리아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의 최근 언급이 비자 취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짚었다. 아리아스는 지난달 4일 로드리고 차베스 현 정부의 대미 외교 전략을 “복종적”이라고 규탄하는 한편 관세 부과를 무기화해 국제 사회에 충격파를 던지는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코스타리카 정부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순방 이후 "미국에서 추방된 제3국 이민자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작은 규모의 국가가 미국 정부와 다른 의견을 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닌데, 미국 대통령이 로마 황제처럼 상대방에 명령조로 지시하는 경우엔 더 그렇다”며 “제가 국정을 운영할 당시 코스타리카는 ‘바나나 공화국’이 아니었다”고 적었다. 바나나 공화국은 주로 1차 산업에 의존하며 국제 자본 영향을 받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남미 국가를 경멸조로 일컫는 표현이다.
아리아스는 또 “미국은 적을 찾는 국가로서, 오늘날 그 적은 중국”이라며 “(미국은) 중국을 빌미로 군사비 증액을 정당화한다”고 지적했다.
아리아스 전 대통령은 두 차례(1986~1990년·2006~2010년)에 걸쳐 코스타리카 대통령을 지낸 인물로, 1980년대 내전으로 혼란한 중미 문제 해법으로 ‘군사력 지원’ 가능성을 내비쳤던 미국 등 열강의 움직임에 반대하며 역내 평화 협정을 성사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1987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마지막 임기 동안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으며, 2007년에는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이름을 딴 평화재단을 설립해 군비 감축 운동을 펼치며 현지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9년에는 과거 대통령 재임 시절 성 추문 의혹으로 피소되기도 했지만, 사건 관계인의 고소 취하와 검찰 공소 취소 결정 등으로 혐의를 벗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