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울산공장에 약 1조 원을 투자한 하이퍼캐스팅 생산 시설 구축을 연기한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과 미국의 고율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시설 투자를 조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0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005380)는 최근 울산공장 하이퍼캐스팅 공장의 양산 시점을 내년에서 2028년으로 2년가량 미루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측은 지난해 말부터 울산공장 노조와 협의를 거쳐 최종 결론 도출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현대차가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늘리고 있는 만큼 전기차에 집중된 하이퍼캐스팅 투자는 속도 조절을 한다는 차원”이라며 “노조와 막판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현대차가 1조 원가량을 투입해 울산공장에 건설 중인 하이퍼캐스팅 공장은 대형 틀에 알루미늄을 넣고 강한 압력으로 차체를 통째로 제조하는 첨단 공법이다.
통상 전기차 생산에 활용돼 차체 생산에 필요한 부품 수를 줄이고 용접·조립 과정의 품질 불량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생산 효율성이 높아진다. 하이퍼캐스팅과 유사한 ‘기가캐스팅’ 방식을 도입한 미국 테슬라는 생산 단가를 40%가량 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퍼캐스팅 도입 일정을 미루는 배경에는 전기차 수요 둔화뿐 아니라 미국의 25% 관세 부과도 맞물려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약 170만 대)의 절반 이상을 국내에서 수출했다. 하지만 미국이 최근 수입차에 25% 관세 부과를 강행하면서 한국 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물량이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이 때문에 예정된 국내 투자를 조절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의 관세로 인해 늘어난 비용을 분산하기 위해 글로벌 전략 조정에 돌입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기아가 지난해 미국으로 수출한 차량은 약 101만 대다. 시장에서는 25% 관세 부담으로 수출 차량 1대 당 약 800만 원의 비용 부담이 늘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세 비용만 약 8조 원으로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약 24조 9000억 원)의 30%에 달한다.
현대차·기아는 단기적으로 관세를 부담하더라도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기아에게 미국 시장(약 171만 대)은 단일 시장 기준으로 한국(125만대)보다 큰 최대 판매처다. 현대차그룹은 관세 충격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 마련에 돌입했고 이에 발맞춰 전 세계 생산 계획 재조정과 판매 전략 수정에 나섰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미 인도 시장에서 차량 가격 3%를 인상하는 안을 발표했고 최근에는 미국의 신차 구입 고객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무상 수리 서비스를 올해 말 종료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기아는 9일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데이에서 2030년까지 판매 목표를 430만 대에서 419만 대로 낮춰 잡았다. 판매 목표 대수가 줄어들면 생산 계획도 함께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대차도 한국 공장에 구축할 하이퍼캐스팅 설비의 도입을 연기했다.
현대차·기아가 관세 부담을 흡수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시장은 결국 미국에서 판매하는 자동차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서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미국에서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 없다”라고 밝혔다. 다만 시한은 6월 2일까지라고 조건을 붙었다. 골드만삭스는 관세 정책으로 미국 내 수입차 가격이 5000~1만 5000달러(735만~2205만 원)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시장에서 가격을 인상하면 현대차·기아로서는 수요 감소라는 또 다른 위협에 놓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관세를 낼 필요가 없는 미국 공장 생산량을 크게 늘려서 비용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국 내 자동차 부문에 향후 4년간 약 12조 6600억 원을 투자한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생산능력은 연간 70만 대였지만 최근 메타플랜트(연산 30만 대)를 준공해 생산능력을 100만 대까지 늘렸다. 현대차그룹은 메타플랜트 생산능력을 50만대까지 늘려 미국내 총 생산 규모를 120만 대까지 확대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