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가 ‘제로(0)’ 하한에 다가설 경우 양적완화(QE) 정책을 도입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이 보유한 국고채나 회사채를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으로 미국이나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이 주로 실행해왔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2.75% 수준으로 아직 인하 여력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금리정책만으로 저성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은이 시중에 직접 돈을 푸는 방안까지 동원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30일 한은이 한국금융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정책 심포지엄에서 “우리 경제는 저출산·고령화 심화,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의 발언을 파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도 아니고 국채 시장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규모가 크지 않아 양적완화가 제대로 작용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마구 사들일 경우 국가 재정 건전성이 흔들릴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한은에서는 그동안 양적완화 도입 가능성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이 총재가 직접 양적완화 도입에 대한 포문을 열면서 향후 다양한 정책적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만약 양적완화와 같은 수단을 활용하기 어렵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체 정책 수단이 무엇인지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이날 열린 심포지엄에서 그동안 비정기적으로 진행했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도 정례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RP 거래는 한은이 은행들이 보유한 국채를 일정 기간 사들였다가 되팔아 시중에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이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5월 이후 금리를 0.5%포인트 이상 내리는 빅컷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양적완화까지 검토해야 할 정도로 경기 침체가 심화할 수 있으니 올해 빅컷과 같은 좀 더 과감한 통화정책을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다고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