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의 ‘위기 경영’을 불러온 반도체 부문의 1분기 영업이익이 1조 1000억 원에 머물렀지만 일각의 우려와 달리 최악의 수준은 비켜간 것으로 평가된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 부진이 극심했지만 미국발 관세 폭탄에 대비해 서버나 스마트폰·PC 등의 사재기 수요가 증가한 덕이다. 삼성전자는 하반기에 본격적인 반도체 수익 반등을 기대하며 ‘상저하고’ 실적을 예고했는데 이는 HBM과 파운드리 부문에서 글로벌 빅테크 고객을 확보할지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실적을 두고 증권가에서는 최근까지도 영업이익이 5000억 원대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상당했다. 미국이 중국 HBM 수출에 제동을 걸었고 부가가치가 높은 엔비디아향 인공지능(AI) 반도체용 HBM 공급이 늦어지며 실적의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 수율 부진으로 대형 고객사 확보에 실패한 파운드리 등 시스템 분야에서 수조 원대 적자가 예상됐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영업이익은 1조 1000억 원으로 선방한 수준이었다. 삼성전자는 서버용 D램 판매 확대에 낸드 저가 매수, 미국 관세에 대비한 재고 비축 등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1분기 세트 프리빌드(사전 재고 비축)가 확대돼 고객사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분기 초 예상보다 수요 회복이 가시화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소비 촉진 정책인 이구환신 효과로 스마트폰과 PC 등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되살아난 점도 한몫했다.
반도체 업계는 2분기 이후 시황 회복 등에 힘입어 ‘메모리의 시간’을 기대하고 있지만 미국발 관세정책으로 불확실성이 높아 단언하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반도체 관세 부과 가능성이 여전하고 미국의 중국 견제는 전반적인 시장 수요 위축을 촉발할 수 있다.
다만 삼성전자는 하반기 이후 실적 개선에 대한 강한 기대를 내비쳤다. 김 부사장은 “주요 고객사에 (HBM3E) 개선 제품의 샘플 공급을 완료했다”며 “2분기부터 점진적으로 판매 기업 폭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HBM 판매량은 1분기 저점을 찍은 후 매 분기 계단식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HBM4 역시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은 반도체 회사 수익성과 직결된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내 엔비디아에 HBM 공급을 목표로 하지만 아직 퀄(승인) 소식은 없다. 결국 HBM 계단식 상승의 단초는 엔비디아 퀄 통과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삼성 반도체 회복의 다른 선결 조건인 파운드리는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미정 파운드리사업부 상무는 “2㎚(나노미터·10억분의 1m) 1세대 공정의 신뢰성 평가를 완료해 2분기 양산 투입을 시작할 계획”이라며 “2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 수율 개선과 안정화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나노 2세대 고객사 수주에 박차를 가할 계획인데 연내 대형 고객사 확보를 마치면 적자를 상당 폭 줄일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퀄컴과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양산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향후 자동차 회사 등 추가 수주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이날 로봇과 AI등 신사업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박순철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로봇 분야에서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자체 개발과 외부 파트너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임원들에게 초과이익성과급(OPI)에 이어 장기성과인센티브(LTI)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LTI는 만 3년 이상 재직한 임원을 대상으로 지난 3년간 경영 실적에 따른 보상을 향후 3년 동안 매년 나눠서 지급하는 제도다. 위기 상황과 주가 하락 등에 대해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취지로 이 방침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박 CFO는 “다양한 논의 끝에 책임 경영 강화와 임원의 사업 위상 회복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기 위해 임원 성과급에서 주식 보상 비중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