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합방을 주도했던 이완용의 증손자가 국가로부터 환수한 땅을 매각하고 캐나다로 이주해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
해당 부지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545·546·608번지 일대 토지 2354㎡(약 712평)로 정부가 ‘친일 행위로 축적한 재산’이라며 환수했던 땅이다.
하지만 이완용의 증손자는 국가를 상대로 토지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친일파의 땅이라도 법률상 근거 없이 재산권을 빼앗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다”며 원고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과 대법원도 “원심판결에 법리 적용 오류나 사실 판단 오인이 없다”며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부동산 전문매체 땅집고에 따르면 이씨는 1997년 11월 되찾은 증조부 땅을 3.3㎡당 400만~450만 원에 매각했다. 총 매매가는 3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부지는 2008년부터 북아현2구역으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향후 지하 3층~지상 29층, 28개동, 2320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이완용은 일제 강점기 당시 전국에 1801필지, 2233만4954㎡(여의도 면적의 5.4배) 부동산을 보유했다. 그러나 조사위가 환수한 부동산은 1만928㎡로 이완용 소유 부동산의 0.05%에 불과했다. 이는 이완용이 해방 전 토지 대부분을 현금화했기 때문이다.
이완용은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합방을 주도한 ‘을사오적’ 중 한 명이다. 그는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고종에게 퇴위를 강요하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이후 총리대신으로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으며 일제강점기던 1926년 2월 12일 폐렴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