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中企 기준 10년 만에 개편…"매출액 기준 1500억→1800억 상향"

소기업도 120→140억 높여

중기 졸업 500개 기업 수혜

573만개 중소기업 성장 지원

일각선 피터팬 증후군 우려도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 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 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경북 칠곡에서 자동차 부품 회사를 운영하는 A대표는 지난해 매출액 1000억 원을 넘겼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의 현행 중소기업 매출 범위 기준이 1000억 원인 만큼 중소기업 지위를 잃기 때문이다. A대표는 “중견기업이 되면 세제혜택 등 정부 지원이 줄어 법인 쪼개기를 해야 하나 고민"이라고 하소연했다.



충북에서 1차 금속 제조업을 하는 B대표는 알루미늄 가격이 꾸준히 오르면서 근심이 깊어졌다. 제품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으로 판매가격 상승에 따른 매출만 늘어 울며 겨자먹기로 중소기업을 졸업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B 대표는 “현행 중소기업 범위가 정해진 2015년 이후 비철금속 가격이 계속 올랐다”며 “현재 중소기업 범위 기준을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중소기업 매출구간 조정안. 자료제공=중기부중소기업 매출구간 조정안. 자료제공=중기부


정부가 물가상승과 생산원가 급증, 관세 이슈를 반영해 중소기업 매출 범위 기준을 최대 1500억 원에서 1800억 원으로 10년 만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성장 없이 물가 상승에 따른 매출 확대로 중소기업 지위가 상실돼 세제감면과 정부 지원 등이 끊겨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기업 성장사다리 촉진을 위한 중소기업 매출액 기준 개편안'을 1일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확정했다.

중소기업 범위 기준 상향으로 중소기업을 졸업한 500여개 기업이 다시 중소기업 지위를 얻게 돼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중기업에서 소기업으로 편입되는 곳도 2만 9000여 개로 추산된다.

정부가 10년 만에 중소기업 범위를 높인 것은 물가상승과 관세전쟁 등 외부 요인에 따른 매출 확대로 세제 지원 등 중소기업 혜택을 받지 못해 소규모 기업의 성장이 저해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실제 중기부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실질 GDP로 나눈 물가지수인 GDP 디플레이터는 17%, 생산자물가지수는 26%, 수입물가지수는 42%나 상승했다.

중소기업 범위 기준조정 업종 해당 중소기업 현황.자료제공=중기부중소기업 범위 기준조정 업종 해당 중소기업 현황.자료제공=중기부


이에 중기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등 전문가 테스크포스(TF)를 꾸려 지난 해 5월부터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범위기준 개편안을 만들었다. TF는 기준을 조정하면서 성장 사다리 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는지와 보호·육성이 필요한 기업인지 여부 등 두 가지 원칙을 적용했다.

개편안에 따라 2015년 설정된 현행 중소기업 매출기준은 최대 1500억 원에서 1800억 원으로 상향되고, 소기업 매출 기준도 120억 원에서 140억 원으로 높아진다. 매출구간도 업종별 물가상승률, 매출 증가 정도를 나타내는 경상성장률을 고려해 5개 구간에서 7개 구간으로 세분화했다. 실제 사례를 보면 1차 금속 제조업은 알루미늄, 동, 니켈 등 수입 비철금속 국제가격(LME)이 2015년 이후 60% 이상 상승하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 수요 등으로 금속 가격이 더 상승하는 등 원가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 고려됐다. 자동차 제조업 역시 미국의 품목별 관세 25% 영향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단품 제조방식에서 모듈 제품 조립 방식으로 공급구조가 변해 수익성 변화 없이 매출만 커지는 상황이 반영됐다. 1차 금속 제조업과 펄프, 종이제품 제조업, 전기장비 제조업은 이 같은 상황을 참작해 매출액 기준을 현행 1500억 원에서 최대 1800억 원까지 확대된다.



개편된 기준에 따르면 44개 중소기업 업종 중 16개, 43개 소기업 업종 중 12개의 매출액 범위가 상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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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안 기준 상향 업종에 속하는 중소기업은 전체 804만개 중 573만개(중기업 6만3000개·소기업 566만7000개)로 중기부는 해당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세제감면과 공공조달, 정부 지원사업 등의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중기부는 개편안을 담은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을 이달 입법예고하고 '온라인 중소기업 확인 시스템 개편'을 거쳐 9월에 시행할 예정이다.

중소기업계는 정부의 중소기업 범위 기준 개편에 환영의 뜻을 보였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정부가 2015년 이후 10년 만에 중소기업 범위기준인 업종별 매출액 상한을 상향 조정한 것을 환영한다"라며 "이번 조정을 계기로 매출 기준 경계선에 있는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정책 대상으로 다시 포함돼 우수 인재 유입, 기술 혁신, 투자 확대 등 '기업 성장사다리' 체계를 더욱 견고화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지원은 줄고 규제가 늘어나는 정책으로 중소기업들이 성장을 멈추는 ‘피터팬 증후군’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중기부에 따르면 중견기업 규모임에도 중소기업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졸업 유예’를 선택한 기업 수가 2021년 855개에서 2022년 1029개, 2023년 1143개, 지난해 1377개로 매년 증가세에 있다.

중견기업계 관계자는 “단순 중소기업 범위를 획일적으로 늘리는 방식은 기업의 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클 수 있도록 중견기업의 성장과 경쟁력을 강화할 육성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범위 기준 개편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범위 기준 개편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오영주 중기부 장관은 “피터팬 증후군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견기업으로 가는 성장사다리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라며 "미국의 관세 강화로 인한 수출 가격경쟁력 확보,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 악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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