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보호에 발목이 잡혔던 서울 시내 재건축 사업들이 잇따라 국가유산청의 문턱을 넘으며 궤도에 오르고 있다. ‘한양도성 성곽 보호’ 명목으로 사업이 10년 가까이 멈췄던 종로구 사직2구역은 최근 국가유산청으로부터 조건부로 정비계획 변경 동의를 받았다. 지난해 풍납토성 내부 아파트 중 처음으로 국가유산청의 심의를 통과한 송파구 풍납미성 아파트도 정비구역 지정 절차에 돌입했다. ★본지 2024년 7월 15일자 20면 참조
22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최근 ‘경희궁지 주변 사직2구역 재개발사업 정비구역 및 정비계획 변경 검토’ 안건에 대해 조건부 동의 결정을 내렸다. 국가유산청이 내건 조건은 사직2구역 내에 한양도성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일부 지역에 대해 자연경관지구를 유지하라는 내용이다.
사직2구역은 구역 내 북서쪽 일부 지역이 한양도성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자 자연경관지구로 묶여 있다. 서울시 조례상 자연경관지구에서는 재개발 때 높이가 최대 24m로 제한된다. 즉 한양도성 성곽과 가까운 지역은 건물을 높이 올리지 않는 조건으로 국가유산청이 정비계획 변경을 허락한 것이다. 사직2구역은 근처에 경희궁·한양도성·사직단 등 국가유산이 많아 국가유산청의 판단이 중요하다.
사직2구역 재개발은 종로구 사직동 311-10 일대 약 3만 4600㎡ 저층 주거지를 아파트 단지로 만드는 사업이다. 광화문·시청과 가까워 직주 근접성이 높다는 점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이 같은 직주근접성은 인근 경희궁자이 2단지(돈의문뉴타운 1구역 재개발) 전용 84㎡가 3월 24억 8500만 원에 매매되는 등 1년 만에 약 5억 원이 오른 동력으로 꼽힌다. 사직2구역은 돈의문뉴타운 1구역과 비슷한 시기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2013년 사업시행계획 변경 인가를 신청한 것이 악재가 됐다. 한양도성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던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성곽 보존을 이유로 사직2구역 사업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서울시는 2017년 사직2구역을 정비구역에서 직권 해제했다. 조합이 직권 해제 무효 소송을 제기해 2019년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까지 받았지만 이후 서울시가 구역 내 ‘캠벨 선교사 주택’을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해 사업 재개가 어려웠다. 사업은 시정이 바뀌고 2022년 새 시공사로 삼성물산을 선정하며 재개의 물꼬를 텄다.
문제는 그동안 공사비가 가파르게 올랐다는 점이다. 조합은 176%의 용적률로 456가구 아파트를 짓는 기존 정비계획으로는 사업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지난해 서울시와 정비계획 변경을 위한 협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경희궁에서 바라본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용적률을 약 220%로 올려 576가구를 짓는 안을 마련했다. 이 내용으로 지난해 11월 종로구에 정비계획 변경 신청도 마쳤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가유산청 의견에 따라 건축계획이 좌지우지될 수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일찍 없애는 차원에서 위원회 심의 전 국가유산청 판단을 받을 것을 (조합에)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국가유산청의 요구를 반영해 서울시와 나머지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공원을 비롯한 정비기반시설 조성 방식 등을 논의하고 있으며 시·구 검토, 주민 공람 등 후속 절차를 거쳐야 한다. 조합은 올해 안에 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정비계획 변경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후에는 조합원 주택 배분, 사업시행계획 변경 인가 등의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한편 ‘한강 변 숨은 진주’라 불리는 풍납미성 아파트도 내주 정비계획안을 주민에 공개할 예정이다. 정비계획안엔 용적률 167%, 4개 동, 275가구인 현재 아파트를 용적률 249%, 6개 동, 413가구로 재건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1985년 준공된 풍납미성은 용적률이 낮고 한강과도 가까워 사업성이 높지만 사적 11호 풍납토성 내부에 위치한 점이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가유산청이 사적분과위원회 심의에서 23층 재건축을 허용하면서 반전을 맞았다.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을 완료하면 조합 설립, 시공사 선정 등 사업을 본격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