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에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문화냐”라고 말하는 사람은 “요즘 세상에 아직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나”라는 반박을 받을 수 있다. 이미 K팝이 뜨고 한류가 세계에서 대활약을 펼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만 K컬처가 성공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순전히 문화인들의 노력 덕분이지, 정부나 주요 산업계의 지원 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원은커녕 심각한 푸대접을 받고 있다.
5월 초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2025년도 제1차 추가경정예산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달랑 486억 원만 반영됐다. 이는 전체 추경 예산 13조 8000억 원 가운데 0.35%에 불과한 것이다. 당초 문체부는 이번 추경에 끼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했지만 막판에 그나마 아주 일부가 반영된 셈이다.
최근 문화 재정은 전체 정부 예산 배정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 이번 추경에서의 몫은 2025년 전체 예산에서 문체부가 차지하는 비중 1.05%(673조 원 대비 7조 672억 원)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전체 예산 대비 문체부 비중은 앞서 2020년 1.27%에서 2024년 1.06%로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중이다. 이는 집권 세력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여당이 국민의힘인지 더불어민주당인지를 가리지 않는다.
유력한 문화계 인사인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취임했을 때 많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도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나 여야를 막론하고 평소에는 항상 문화가 중요하다고,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예산 배분 문제에 맞닥뜨리면 목소리가 작아지더라. 이해는 할 수 있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당장 결과가 안 나오는 문화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한 결과가 문화 예산의 지속적인 감소다. 올해 문체부 예산은 지난해 대비 1.6% 늘어났는데 전반적인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규모가 축소된 것이다.
문화계에서는 문화가 주요 제조 산업에 못지않게 먹거리를 많이 생산한다며 ‘투자 효과’를 강조한다. 3월 공개된 중장기 문화 비전인 ‘문화한국 2035’에 따르면 국내 문화 산업의 대표 격인 문화 콘텐츠의 2023년 수출액은 133억 달러로 2차전지 98억 달러, 가전제품 80억 달러 등 주요 제조업 분야보다 높다. 문화 콘텐츠 생산과 수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또 2022년 기준 예술·스포츠·여가 분야 고용유발계수는 14.5로 제조업 7.6, 건설업 10.8보다도 월등하다.
더불어 그동안 정부의 보조금 등 지원 대상으로만 인식된 예술 분야에도 보증·융자·펀드 등의 민간자금 활용을 통한 시장화가 추진되고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기업들의 후원과 자매결연을 통해 자생력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지방 문화의 발전이 지역 균형 발전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음 달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문화도 분명한 미래 먹거리가 되기 위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직속 기구인 ‘K문화강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유홍준 교수는 최근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화 강국이나 문화·예술은 역대 대선 후보들의 아주 상투적인 메뉴였다. 당선 후에는 후순위로 밀리고 예산이나 얼마 더 주는 것으로 끝나고는 했다. 하지만 이 후보는 다를 것이다. 제가 보기에 그의 문화 강국에 대한 의지와 마인드는 상당히 강하다.”
유 교수는 이런 언급도 했다. “통치자가 되는 사람의 강한 의지만 있으면 예산을 조정하는 재정 당국이 거기에 맞춰서 온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리라 생각한다.” 누가 선거에서 이기든 이런 의지가 실현되기를 강력히 바란다.
이달 9~11일 사흘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케이콘(KCON)’에는 일본인 등 모두 11만 명이 관람했다. 기자가 현장에서 본 모습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한쪽에서는 혐한이니 반일이니 하고 있지만 그곳의 젊은이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한국과 일본의 두 문화를 즐기고 있었다. 문화가 한일 간 갈등의 역사를 뛰어넘는 충분한 매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