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월담은 실형, 경찰관 폭행은 집유… 公권력 아닌 空권력" [채민석의 경솔한이야기]

■ 空권력 된 公권력

법원 침입자 징역 10개월 선고

경찰폭행자는 징역형 집행유예

"가족이 탄원" 부실한 양형사유

경찰 "우리가 법원 경비견인가"

경찰 5명 때려도 집행유예 빈번

전문가 "결국 피해는 시민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1월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고 있다. 뉴스1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1월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고 있다. 뉴스1




“아무리 법원이라도 단순 월담자는 징역형을 선고하고 동료 경찰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사람은 집행유예라니… 누가 시위 현장에 나가고 싶어하겠습니까.”




이달 16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난 1월 19일에 발생한 서울 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로 기소된 남성 4명에 대한 1심 선고 결과가 나왔다. 4명 중 2명에게는 징역 10개월이, 나머지 2명에게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징역형을 선고 받은 인물 중 1명인 우 모 씨는 언론사 취재진을 가방으로 내리쳐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상해)가 적용됐다. 그는 ‘가방을 던지다 실수로 피해자를 맞췄다’는 변명을 하고 500만 원을 공탁하는 등 실형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법원은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형을 선고 받은 안 모 씨의 혐의는 건조물침입이다. 경찰의 경비를 뚫고 월담을 해 법원으로 침입했다는 것이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항의하기 위해 청사 뒤쪽으로 이동한 다음 외부와의 경계에 설치돼 있던 철제 울타리를 넘어 법원 청사에 들어갔다. 안 씨는 법원 건물 내부에 침입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은 안 씨에 대해 “ 법원의 재판 작용은 자유로운 토론과 합리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면서도 “법원의 재판 과정이나 결과가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법원을 공격하는 것은 도저히 용인될 수 없다”고 단호히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법원에 대한 불법적인 공격은 헌법에서 부여한 법원의 재판 작용을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를 크게 후퇴시킨다”며 “피고인은 직전에 몇 차례 인근 검찰청 담장 울타리를 오르다가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음에도 재차 월담을 시도해 범행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1월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고 있다. 뉴스1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1월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고 있다. 뉴스1


◇”가족이 탄원서 제출”…경찰 폭행한 집회 참가자의 양형 이유

무고한 언론사 취재진에게 상해를 입힌 자와 단순 월담자의 실형 형량이 같다는 점에서도 법원의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진짜 문제는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집행유예를 받은 나머지 2명이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모 씨는 자진 해산 요청에 불응하는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하던 서울 마포경찰서 소속 30대 경사의 머리를 들이받고 정강이를 발로 차는 등 폭행을 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남 모 씨 또한 집회 참가자들을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던 서울경찰청 기동대 소속 50대 경감의 정강이와 얼굴을 폭행했다.

폭행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이 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남 씨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및 벌금 20만 원을 선고받았다. 단순 월담을 통해 ‘성역’인 법원에 침입한 자보다 집회 참가자들을 막아서는 경찰관을 주먹과 발을 이용해 폭행한 자들의 형량이 더 낮게 나온 것이다.

법원은 공무집행방해 범죄에 대해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를 무력화시켜 국가의 기능을 해하고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의 신체 안전까지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법원은 판결문에 이들 두 명에 대한 각종 유리한 정상을 언급하며 정반대의 결과는 내놨다.



법원은 남 씨에 대해서 ‘범행은 피고인의 단독 범행’,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다’, ‘경찰관들이 자신을 막아서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행사한 폭력의 정도가 아주 중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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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에 대해서도 ‘조현병이 있다’,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고 가족이 선처를 탄원했다’. ‘4개월간 구금돼 있으면서 자숙의 기회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반성의 기미와 범행의 정도가 법원의 주관으로 양형에 적용된 것이다.

1월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려 경찰이 이를 진압하기 위해 집결하고 있다. 뉴스11월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려 경찰이 이를 진압하기 위해 집결하고 있다. 뉴스1


◇"양반 소유 재물보다 하찮은 노예들"… 경찰, 판결에 동요

경찰관들은 이러한 법원의 판단에 크게 동요하고 있다. 월담 행위는 실형에 해당하면서 이를 막아서던 자신들을 폭행한 것은 ‘반성의 기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행유예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건 당일 현장에 출동한 한 경찰관은 이번 판결에 대해 “조선시대 양반의 영토를 지키다 죽은 노예들이 그 땅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법원이라는 성역을 막아서는 노예를 두들겨 팬 행위보다 그 성역에 발을 들인 죄가 더욱 크다는 것을 인정한 판결”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경찰관은 “경찰관을 폭행해도 집행유예가 나온다는 사실을 집회·시위 참가자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한 셈”이라며 “추운 날 밖에서 떨며 둔기를 들고 몰려든 집회 참가자들을 온 몸으로 막아서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동료 경찰관들의 희생이 부질없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 누가 집회 현장에 가고싶어하겠나”고 반문했다.

한 간부급 경찰관도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가 부실한 현실 속에서 불평 불만 없이 고군분투하며 노력해온 부하 직원들도 이번 결과에 상당히 동요하는 모습이었다”며 “법원 관계자들은 경찰을 겨우 자신들을 지키는 경비견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시킨 오만한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1월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려 경찰이 이를 진압하기 위해 집결하고 있다. 뉴스11월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려 경찰이 이를 진압하기 위해 집결하고 있다. 뉴스1


◇”경찰 6명 폭행해도 집행유예…公권력 아닌 空권력”

매년 집회·시위가 늘어남에 따라 관련한 공무집행방해 사범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경찰공무원에 심각한 상해를 입혀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서울경제가 분석한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 2022년 9월 15일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특수공무집행치상 등 4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노동조합 조직쟁의실장 A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A 씨는 2020년 1월 한 건축현장에서 자신이 속한 노조 조합원 채용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노조원 50여 명과 함께 집회에 나서 경찰과 대치하던 중 경찰을 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경찰관을 넘어뜨려 발로 밟거나 주먹으로 가격해 경찰관 4명에게 전치 2주, 1명에게 전치 4주, 1명에게 전치 5주의 부상을 입혔다.

비단 집회·시위 뿐만 아니라 음주단속이나 치안유지를 위한 순찰 등 일상생활 전반에서 발생하는 공무집행방해 행위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공무집행방해 사범으로 검거된 인원은 총 1만759명으로 2021년 9132명, 2022년 1만288명에 이어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 중 위험한 물건을 사용해 공무집행을 방해한 특수공무집행방해로 검거된 인원도 2021년 453건, 2022년 583건, 2023년 606건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불구속 인원 또한 2021년 8659명, 2022년 9714명, 2023년 1만92건으로 함께 늘어났다.

정보성 광주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질 경우, 사회적으로 '경찰에 대한 폭력이 그렇게 큰 죄가 아니구나'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공권력을 약화시키게 된다”며 “경찰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떨어진다면 경찰은 직무에 대한 효능감과 자신감을 잃게돼 적극적인 업무 집행이 어려워져 결국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채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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