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日 맹비난' 트럼프, 다음 타깃 韓 우려…LNG 앞세워 美 달랜다

■통상본부장 나흘만에 또 미국행

고위급 접촉 '성실 협상국' 눈도장

LNG 구매로 무역적자 해소 관측

"막판 협상이 관건…의지 강조해야"

美, 베트남 관세 46%→20% 낮춰

삼성·LG 현지 법인 일단 '안도'

트랜스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전경. AP연합뉴스트랜스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전경. AP연합뉴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에서 귀국한 지 나흘 만에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이유는 한국이 ‘불성실 협상국’으로 분류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을 벌이던 일본을 상대로 “버릇이 잘못 들었다(spoiled)”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자 다음 차례가 한국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선 셈이다.



현재 정부는 7월 8일로 예정된 상호관세 유예 조치가 연장되지 않거나 현재 25%인 관세율이 더 인상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협상에 임하고 있다. 여 본부장은 3일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통상추진위원회를 주재하며 “관세 유예기간 종료를 앞두고 주요국의 경쟁적 협상 구도가 요동치고 있는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낙관적·비관적 시나리오 모두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미국 측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측이 성실 협상국과 불성실 협상국을 구분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어떤 협상이든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다”며 “한국이 얼마나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고 있는지 강조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도 “실무 협상에서 분위기가 좋았다 해도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이번 여 본부장의 방미길은 4차 기술 협상과 같은 공식 교섭이 아니라 고위급 접촉 형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달 29일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달 29일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미국 출장에서 여 본부장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투자 가능성을 심도 있게 다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데 통상 협상의 방점을 찍고 있는데 양국이 협상 중인 안건 중 LNG 수입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일본과 대만은 LNG 수입 확대를 약속했고 베트남은 항공기를 구입했다”며 “무역적자를 실제로 줄일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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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미국이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의 경우 되레 국내 소비자의 반감을 불러 수입액이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한국은 미국산 소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여서 무역수지 적자를 극적으로 줄이는 데 기여하기 어렵기도 하다. 정밀지도 반출을 허용하거나 방산 분야 조달 방식을 개선하는 문제도 당장 미국산 수입액을 늘리기는 힘든 분야로 여겨진다.

반면 한국의 지난해 LNG 수입액은 3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데 비해 미국산의 비중은 12.2%에 불과하다. 협상 결과에 따라 미국산 수입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알래스카산 LNG가 도입되는 경우 운하나 해협 같은 병목 구간 없이 비교적 빠르게 LNG를 수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한국이 2017년 이후 전 세계에서 미국산 LNG를 가장 많이 매입한 큰손이라는 점을 부각해 유리한 구도를 이끌어낼 수 있다.

여한구(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3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48차 통상추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제공=산업부여한구(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3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48차 통상추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제공=산업부


미국과 베트남의 통상 협상이 타결돼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둔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단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난 것도 우리 측으로서는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양국은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품목의 관세를 기존 46%에서 20%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일단 베트남을 통한 우회 압박에서는 벗어났다는 게 산업계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현재 삼성전자는 베트남 박닌, 타이응우옌에서 스마트폰을, 호찌민에서는 가전제품을 각각 만들어 해외로 수출한다. LG전자는 하이퐁 법인에서 수출용 가전제품을 조립한다. LG전자는 멕시코와 인도 등 글로벌 각지 공장의 생산량을 조절하는 ‘스윙 생산’으로 관세에 대응해왔는데 이번 베트남 관세 인하로 전략적 유연성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여전히 관세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최악은 면했다는 분위기”라며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의 추가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기업들의 경영 판단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품목별 관세가 여전한 데다 우회 수출에 대해 4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명시한 점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당장 목표는 베트남산으로 둔갑한 중국산이겠지만 상황에 따라 조립 과정만 거친 한국산도 부과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주재현 기자·강해령 기자·조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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