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격하한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가운데 AIDT 개발에 참여한 출판사들이 11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교과서로서 법적 지위를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AIDT 발행사·발행예정사 20곳과 교과서발전위원회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전날 국회 교육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재석 15인 중 찬성 9명, 반대 6명으로 통과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AIDT를 포함한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소프트웨어’는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될 전망이다. 교과서는 모든 학교가 의무 도입해야 하지만 교육자료는 도입 여부를 학교장 재량에 맡긴다.
이와 관련해 발행사 측은 “AIDT의 활용성과 확장성은 ‘교과용 도서’라는 법적 지위가 보장될 때 비로소 학교 현장에서 지속적인 활용과 업데이트가 가능해진다"면서 “AIDT가 교육 자료로 격하된다면 공교육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한 구조 자체가 흔들릴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교육 자료가 아니라 교과서로 활용될 것을 전제하고 제작했기 때문에 다국적 언어지원·보편적 학습설계(UDL) 등 각종 기능을 탑재하고 콘텐츠 저작권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지위 변동 시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AIDT 사업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졌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국비 5300억 원, 인프라를 포함해 약 2조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면서 "잦은 정책과 불투명한 입법 논의로 인해 일부 기업들은 구조조정과 고용 축소에 들어갔고, 상황이 지속되면 산업 전반이 위기에 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AIDT 개발·운영에 약 9000~1만여 명의 종사자가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박정과 천재교육 대표는 "정부 정책을 믿고 지금까지 개발사들이 각각 출원한 8000억 원 상당의 투자금이 사실상 회수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할 경우 앞으로 국가 정책에 대한 민간 파트너십을 가져가기 매우 어려워질 것이고 이는 돈으로 산출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손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발행사들은 △AIDT 교과서 지위 변경 시도 중단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전면 재논의 △민·관·정 교육혁신 TF 구성을 요구하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헌법 소원과 행정소송 등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국회 본회의까지 개정안이 통과할 경우 모든 발행사가 소송에 참여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AIDT는 대한민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교육 분야에서 실행하고 있는 국가 전략의 핵심 인프라"라며 "이런 흐름을 '교육자료' 수준으로 격하한다는 것은 기술과 교육의 미래를 거꾸로 돌리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황근식 교과서발전위원회 위원장도 국회와 교육부를 향해 AIDT의 법적 지위 격하를 재고해 줄 것을 호소했다. 황 위원장은 “앞서 교육부 측에 1년 동안 조금 더 유예 기간을 주고 학교 현장에서 정말 아이들에게 필요하지 않은지 검증해보고 그 이후에 (격하)해도 늦지 않다고 의견서를 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아침에 무정하게 통과를 시켜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AIDT가 학습 자료로 격하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