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새로운 성장의 축,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김승완 한국에너지공과대 교수

전남에 'K그리드 창업 밸리' 조성

에너지 스타트업 핵심기지로 키워

국가 균형발전 이끌 '기폭제' 기대






최근 한미 간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는 뉴스가 전해지며 온 국민의 긴장도 다소 누그러졌다. 같은 날 오후 대한민국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선언 하나를 내놓았다.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구축방안’. 수십 년간 중앙 집중형으로만 설계했던 전력망을 분산과 연결, 예측과 자율의 체계로 재편하겠다는 새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전파를 탔다. 국가의 모세혈관을 다시 설계하듯 발전과 소비의 공간적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이 에너지 자립을 통해 새로운 성장을 시작하도록 전국 곳곳 첨단 전력망을 촘촘히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AI), 데이터, 전력시장이라는 미래 기술의 3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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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고속도로’라는 브랜드로 대표되는 새 정부의 전력산업 대전환 전략은 단순한 송전망 확충이 아니라 산업구조 혁신과 수출형 기술 생태계 조성까지를 포괄한다. 이번에 발표된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구축방안’은 그중에서도 전남 지역을 실증 거점으로 삼아 재생에너지 수용성 확대, 캠퍼스 마이크로그리드 실증, 산업단지 맞춤형 에너지 운영 등 다층적인 혁신을 실현하겠다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담고 있다. 광양·여수 등 기존 중화학 산업 기반과 연계한 ‘저탄소 산단 운영모델’도 주목할 대목이다. 그린수소, 섹터커플링, 공유형 에너지저장장치(ESS) 같은 기술들이 실제 산업 현장에 녹아든다면 ‘전력망이 곧 산업정책’이라는 말이 더 이상 구호만은 아닐 것이다.

더 나아가 새 정부의 정책은 ‘K그리드’라는 개념 아래 수출 가능한 전력망 기술·산업의 기틀을 세우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간 우리가 강점을 보여온 정보통신기술(ICT), 배터리, 전력망 운영 기술을 융합하고 이를 수요지 인근에서 통합 운영하는 플랫폼 형태로 묶어낸다면 글로벌 에너지 전환 시장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단순한 장비 수출이 아닌 통합 솔루션 기반의 산업화 모델로 진화할 여건이 성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지역 기반의 혁신 생태계와 연결된다. 한국에너지공대를 중심으로 조성될 ‘K그리드 인재창업 밸리’는 단지 기술 실증의 장을 넘어 창업과 투자·교육과 정주 여건까지 아우르는 에너지 스타트업의 기지로 기능할 것이다. 이곳에서 제2의 성장동력이 될 K그리드 생태계가 현실화된다면 진정한 국가 성장의 축이 수도권을 벗어나 비로소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책의 비전과 현실의 성과 사이에는 늘 간극이 존재한다. 정책은 시작일 뿐이며 제도와 시장·지역의 준비도 함께 따라야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우리나라가 처한 대내외적인 환경 속에서 전력망의 대전환은 더 이상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과거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를 시작으로 이미 10년 넘게 전력망 혁신을 실험해 왔고 이제는 그 실패 위에서 자라난 새로운 세대들이 산업과 지역·기술을 통합하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사명을 희망과 열망으로 짊어지고자 한다.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정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기술적 타당성이나 정책 효과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경로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에 대한 화두다. 산업화 이후 늘 수도권을 중심으로 굳건하던 성장의 축에 더해 새로운 축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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