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4일 이재명 정부 첫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정국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윤석열 정부 재의요구권(거부권) 법안 강행 절차를 밟으면서다. 하지만 필리버스터에 들어가도 1개 법안에 최대 24시간만 가능해 7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이달 5일 방송3법 중 가장 먼저 상정된 ‘방송법 개정안’ 통과는 확실시된다.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2차 상법 개정안 등은 필리버스터의 연쇄 여파로 8월 임시국회 처리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주요 ‘윤석열 정부 거부권 법안’ 중 방송3법 먼저 처리하기로 의결했다. 한때 노란봉투법을 우선순위로 올려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거치며 선회했다. 정청래 신임 민주당 대표의 취임 일성인 ‘3대(검찰·언론·사법) 개혁’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특히 하청 업체 노조가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원청 기업을 상대로 교섭권을 부여받는 노란봉투법과 집중투표제 실시 등을 뼈대로 한 2차 상법 개정안의 경우 재계 반발이 큰 만큼 방송3법 우선 처리에 밀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대표는 의총 모두발언을 통해 “검찰 개혁, 언론 개혁, 사법 개혁 중 하나인 언론 개혁에 관련된 방송3법이 맨 앞에 상정된다”며 “무너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출발점이고, 대한민국의 회복과 성장에 다시 시동을 걸 오늘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이 어떻게 방해를 하든지 하나씩 하나씩 반드시 각개격파해야 한다”며 “민생 개혁 대장정이 8월까지 계속되니 국민을 믿고 국민과 함께 거침없이 전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필리버스터에 돌입한 방송3법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게 골자다. 이 중 첫 순서인 ‘방송법 개정안’은 KBS 이사회 수를 15명으로 늘리고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에 사장추천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민수 민주당 의원은 제안 설명을 통해 “공영방송 3사 및 보도 전문 채널 사용 사업자의 사장추천위원회와 보도 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 근거를 신설하는 한편 한국방송공사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 및 합리적 운영을 보장하기 위해 이사회를 각 분야의 전문가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 등을 반영해 확대하고 사장 선출 방식을 보다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는 TV조선 출신인 신동욱 의원이 나섰다. 물통을 들고 연단에 오른 신 의원은 이날 오후 4시 1분부터 발언을 시작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반발 차원에서 본회의장을 떠났다.
신 의원은 “(민주당) 여러분이 원하는 사장을 앉히면 국민이 원하는 방송이 되는 것이냐”면서 “민주당 편향 시민단체에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방송 개혁이라면 방송 개혁이라는 말을 제발 하지 마시라. 민주당 방송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부르라”며 방송법 반대 이유를 주장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최형두 의원도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방송법 비슷한 것이 세계적으로 논의되는 곳은 선진 국가 중에선 없다”며 “특히 공영방송의 이사와 사장을 어떻게 임명하는지를 가지고 논란이 되는 선진국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국회법에 의해 필리버스터는 시작 24시간 뒤 표결을 통해 재적 의원 5분의 3의 찬성으로 토론을 종결하고 법안 표결에 들어갈 수 있다.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단독으로 토론 종결이 가능하다. 7월 임시회 회기가 이달 5일 종료되는 만큼 물리적으로 방송법 개정안만 처리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방송3법 중 나머지 2개 법안(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은 8월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여야 합의에 의해 다음 본회의는 이달 21일에 열린다.
국민의힘은 이들 쟁점 법안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로 맞대응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여야 협의 기구를 구성해 숙의 작업을 거칠 것을 민주당에 재차 촉구했다.
김정재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법안은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결정이지, 정치적 입지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라며 “송언석 원내대표가 제안한 쟁점 협의 기구를 즉시 가동해 정책에 실효성과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차분하고 책임 있는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