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지난해 제주항공 참사 피해를 키운 무안공항 활주로 콘크리트 둔덕 문제를 대대적으로 파헤쳤다.
NYT는 5일 ‘수십 년 누적된 과오가 한국의 활주로 끝에 죽음의 벽(Lethal Wall)을 세웠다’는 제목의 탐사보도를 통해 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의 치명적 문제점을 집중 조명했다. 이 매체는 무안공항 최초 설계 도면부터 26년간의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확보해 분석했다.
NYT 보도에 따르면 1999년 무안공항 최초 설계도에는 방위각시설물(로컬라이저)이 ‘충돌사고 발생 시 항공기에 치명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쉽게 부러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설계가 변경되면서 로컬라이저 지지대가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로 바뀌었다. NYT는 설계 변경 주체와 이유는 불분명하다면서도 콘크리트 구조물이 목재·강철 구조물보다 비용이 저렴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무안공항 설계·시공을 맡은 금고건설 컨소시엄은 NYT의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한편 정부가 오래전부터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 문제를 알고 있었던 정황도 드러났다.
무안공항 운영사인 한국공항공사는 개항 6개월 전인 2007년 국토부에 ‘로컬라이저가 활주로에서 너무 가깝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안전 규정에 맞추려면 로컬라이저를 더 멀리 이동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토부는 로컬라이저 위치 개선을 조건으로 무안공항 개항을 승인했지만 이후 여러 차례 감사에서 이 문제를 재언급하지 않았다고 NYT는 전했다.
결정적 기회는 2020년에 있었다. 법률에 따라 공항 항행시스템은 14년마다 개편해야 하는데 당시 설계업체가 콘크리트 둔덕을 해체하지 않고 오히려 콘크리트 슬라브 구조물을 추가해 강도를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이 구조변경안을 승인하면서 2024년 2월 무안공항 활주로 끝에 높이 2m(로컬라이저 포함 시 4m)의 콘크리트 둔덕이 완성됐다. 참사 발생 10개월 전이다.
NYT는 버드스트라이크 등 다양한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했지만 “활주로 끝의 단단한 벽이 있었기에 벽이 없었을 경우보다 참사의 규모를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이준화씨는 “사고가 일어난 이유가 있겠지만, 죽음의 이유는 따로 있다”라며 콘크리트 둔덕의 치명적 문제를 지적했다.
NYT는 “연이은 설계·건축 관련 선택들이 활주로 인접 콘크리트 위험물 존재로 이어졌다"며 "정부 규제 당국이 안전 경고를 무시해 충돌 시 재난적 결과 확률을 높였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