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아시아를 방문하는 일정에 맞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을 비공개로 검토해왔다고 미국 CNN이 18일 보도했다. 다만 구체적 회담 준비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27일 일본을 방문한 뒤 29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해 한미·미중 정상회담을 갖는다. 만에 하나 북미 정상 간 ‘번개 만남’이 이뤄진다면 일정상 APEC 기간이 유력할 것으로 점쳐진다.
강경화 주미 한국대사는 “APEC을 계기로 뚜렷한 조짐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일본 체류 중 트위터로 김 위원장과 회동을 제안한 직후 판문점에서 만났던 점에서 비슷한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연내 회동 의사를 밝혔고, 김 위원장도 지난달 공식 석상에서 “미국과 마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은 미국을 자극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도 3년가량 멈춘 상태다.
북한은 지난달 김 위원장의 중국 전승절 참석에 이어 최근에는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을 러시아로 보내는 등 북중러 밀착을 크게 강화하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북미 정상 간 대화가 이재명 대통령을 배제한 채 열린다면 우리에게 부담이 클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보유국 인정’을 대화의 출발점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 회담 성사 자체가 국제사회가 북핵 보유를 승인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이 큰 문제다.
북미 대화에 대한 막연한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 메이커’ 역할을 권하면서 ‘페이스 메이커’를 자임했다. ‘동결·축소·비핵화’ 수순의 3단계 북한 비핵화 로드맵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완전한 북핵 폐기 의지와 미국과의 공조 강화에 대한 불신을 되레 키우고 있다.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진짜 중요한 것은 깜짝 이벤트가 아닌 실질적 비핵화 진전을 이끌어낼 전략적 접근이다. 이 대통령의 ‘페이스 메이커’ 구상이 ‘한반도 운전자’를 자임하다가 실패한 문재인 정부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