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미식 평가서로 통하는 ‘미쉐린 가이드’가 각국 관광청과 수백만 달러 규모의 금전 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며 공정성 논란에 휘말렸다.
이에 외신들은 “국가 이미지와 관광산업 홍보라는 명목 아래 돈이 오가면서, 미쉐린의 ‘별’이 더 이상 순수한 평가의 상징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미쉐린 가이드가 지난 15년간 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UAE·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의 관광청으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받고 각국 미쉐린 가이드를 발간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2016년부터 평가 대상국이 된 한국의 경우 한국관광공사가 4년간 100만 달러(약 14억 원) 이상을 지급했으며, 첫 해 발간된 서울판에서 24개 레스토랑이 별을 받았다.
미국 CNN은 태국 관광청 역시 2017년 미쉐린과 제휴하며 440만 달러(약 62억 원)을 지불했고, 그 결과 17개 식당이 ‘별’을 받은 것으로 전했다.
문제는 이런 협력이 미쉐린 평가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로 모든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을 방문한 음식 평론가 앤디 헤일러는 “관광청은 돈을 냈고, 그 대가로 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대 이딩 텅 교수 역시 “정부나 관광청과의 과도한 협력은 미쉐린 브랜드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최근 미쉐린이 호텔·와인 평가 사업까지 확장하면서 이런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0년 BBC ‘마스터셰프’ 우승자 토마스 프레이크도 “베트남 길거리 음식 가판대와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이 같은 ‘별 하나’를 받는다”며 “평가기준이 명확히 공유되지 않는다면 소비자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꼬집었다.
미쉐린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가이드 제작을 위한 출장비와 조사비를 지원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평가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회사 제휴담당자 줄리아나 트윅스는 “모든 계약이 가이드북 발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미쉐린은 해당국 외식 수준에 따라 별 부여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전 미쉐린 심사위원 크리스 왓슨도 “미쉐린 가이드도 결국 하나의 사업이며, 각국을 미식 관광지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옹호했다.
외식 마케팅 전문가 리네 스미스는 “미쉐린 역시 비즈니스다. 비용을 받고 가이드를 제작하더라도 편집 기준이 유지된다면 문제될 건 없다”며 “돈을 낸다고 해서 ‘별’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쉐린의 영향력은 여전하다.1900년 프랑스 타이어 회사에서 출발한 미쉐린 가이드는 현재 25개국에서 3000여 개 레스토랑에 별을 부여하고 있다.
뉴질랜드 말보로의 셰프 토마스 프레이크는 “나는 별을 목표로 하진 않지만, 미쉐린이 제시한 ‘좋은 재료·풍미·기술·일관성’의 기준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며 “그 철학은 여전히 업계의 교본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