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서민금융 새 틀이 필요하다

새마을금고·농협 등 인구감소 직면

대출처 줄어들어 구조적 위기 맞아

지역금융 되살릴 장기 로드맵 필요





27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마을금고는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통폐합이 더 지연되면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3분의 1가량은 통폐합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전국의 새마을금고가 1267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420개가 넘는 금고를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발언이다. 전체 금고의 절반가량인 623곳(49.2%)의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6월 말 기준 8%를 넘어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름 판단의 근거는 있는 셈이다.



새마을금고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딱히 새마을금고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신용협동조합 역시 정도만 다를 뿐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농업협동조합은 농민 감소에 정체성의 위기가 커지고 있다. 같은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은 몸집 자체가 쪼그라들고 있다. 8월 말 현재 저축은행의 대출 잔액은 94조 2660억 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약 3.8% 감소했다. 경제가 매년 성장하고 있고 물가 상승률이 2%를 웃돈다는 점을 고려하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이는 1차로 서민금융기관의 일탈이 원인이다. 박리다매인 소액 신용대출 대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같은 고위험 고수익 사업에 대출을 늘렸다. 2금융권의 토지 담보대출 연체율이 30%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은 부동산 경기 둔화를 감안해도 ‘묻지 마’ 대출을 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현실은 좀 더 복잡하다. 저출생·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지역에는 대출할 곳이 없어졌다. 기업과 청장년층이 빠져나가면서 돈을 빌려주려고 해도 이를 받아갈 이들이 없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여신 금지 업종이 불분명해지고 시중은행들이 기업금융 대신 주택담보대출에 ‘올인’해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 시장을 장악한 것도 원인이다. 기업대출에 강했던 우리은행의 경우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던 기간 동안 안정성에 치중하면서 전체 은행 대출에서 부동산 담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6월 말 기준 31.5%에서 올 6월 말에는 55.1%까지 뛰어올랐다. 2010년 연 44%였던 법정 최고금리가 20%까지 내려온 것 또한 수익 감소에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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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의 문제는 특정 업권의 부실을 넘어서는 서민금융 전반의 구조적인 사안이라는 점이다. 금감원장의 말대로 금고 3분의 1을 도려내 모든 게 해결된다면 당장이라도 극약 처방을 내리면 된다. 그러나 생태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이 같은 조치는 고통스러운 시간 벌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2011년 대규모 영업정지 사태를 겪었던 저축은행이 다시 10여 년 만에 부실 위험에 빠졌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서민금융의 ‘새 틀’이다. 상호금융의 영업 권역 조정을 포함해 어떤 방향으로 재편할 것인지, 농민인 조합원보다 준조합원이 기형적으로 많은 수도권 농협을 어떻게 개혁할지 등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인구 소멸 지역에서 시중은행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상호금융의 역할을 강화할 방안도 찾아야 한다. 지역 금고 중에는 지금도 장날에 시장 상인들에게 잔돈을 바꿔주거나 예대마진을 포기한 채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곳들이 적지 않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이나 대출 중개 업체의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해 인터넷 중심의 중저금리 대출 기관으로 완전히 판을 바꾸는 것에 대한 판단 역시 필요하다. 이는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일 뿐 저성장과 저출생·고령화 시대 지역 금융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있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도 생산적 금융, 소비자 보호와 함께 포용 금융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의 포용 금융은 저신용자에게 저금리를 제공하는 형식의 이자 감면과 빚 탕감에 집중돼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권의 대출 규모가 794조 6100억 원가량 된다. 나랏돈으로 대신하거나 시중은행에 떠안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서민금융이 제 역할을 해야 은행과 보험, 저축은행, 카드, 상호금융권으로 이어지는 금융 생태계가 되살아난다.

금융 당국이 대부업을 포함해 서민금융 정상화를 위한 로드맵을 내놓으면 좋겠다. 시장 원리를 깨는 금리 인하와 채무 조정은 대증요법일 뿐이다. 민간 주도의 서민금융이 살아나지 않으면 10년 뒤에도 지금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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