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하늘을 나는 6성급 호텔로 질적 성장 꾀한다

[포춘 코리아 CEO 500] A380 도입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조양호 회장의 꿈이 이루어졌다. 대한항공의 A-380이 독도 상공을 날았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조양호 회장은 A-380을 날개 삼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을 이루려고 한다.

신기주 기자 jerry114@hk.co.kr


"기내가 너무 넓습니다.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안내원의 안내 를 꼭 받아주세요." 조양호(62) 한진그룹 회장은 이렇게 농담을 던졌다. A-380 이코노미 클래스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백여 명의 기자들도 웃음 을 터뜨렸다. 지난 6월 16일이었다. 독도로 향하는 대한항공 A-380 기내 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조양호 회장은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모습 을 보여줬다. 조양호 회장은 말했다. "대한항공은 A-380 기종 도입을 통 해 승객들이 꼭 타고 싶어하는 명품 항공사로 거듭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A-380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대한항공의 매니지먼트 승리라는 점 에서 더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덧붙였다. "에어버스한테서 A-380을 처음 주문했을 때만 해도 9.11 테러 직후여서 항공 산업이 크게 위축되어 있었습 니다. 하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지금이야말로 비행기를 주문할 적기라고 판 단했습니다. 굉장히 좋은 가격으로 A-380을 주문할 수 있었습니다."

조양호 회장은 한진그룹이 대한항공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안정적으 로 경영할 수 있었던 것도 A-380 기종을 도입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고 말했다. "위기에 강한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지금도 세계적인 연구가 진행 되고 있습니다. 그 요인 가운데 하나가 오너십일 겁니다. 장기적인 매니지 먼트가 가능하다는 게 한국 기업의 큰 장점이지요. 안정적인 경영 덕분에 유연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는 다시 강조했다. "대한항공은 세계적인 명품 항공사가 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한항공을 믿어주신다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하늘에 호텔을 세우다

어느새 대한항공 A-380은 독도 상공에 도착해 있었다. 맑은 하늘이어 서 두 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독도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A-380은 독도 상공을 유유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A-380의 높이는 10층 건물에 해당하는 24.1m에 이른다. 무게는 560t이다. 2층 구조다. 퍼스트 클래스 12석과 비즈니스 클래스에 해당하는 프레스티지 클래스 94석과 이코노미 클래스 301석을 합쳐서 모두 407석의 좌석이 배치됐다. 2층은 모두 프레스티지 클래스다. 가격은 대당 3억7,500만 달러에 달한다. 한화 로 4,125억 원이다.

A-380 기종을 도입한 항공사는 전 세계에서 겨우 5개뿐이다. 맨 먼저 싱가포르 항공이 도입했다. 곧 이어 제조사 에어버스의 국적 항공사인 에 어프랑스, 에어프랑스의 숙적인 독일 루프트한자, 그리고 에미레이트 항공, 호주 콴타스 항공이 A-380을 취항시켰다. A-380을 도입하느냐 아니냐 가 항공사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선이 되고 있다. 실제로 보잉과 특별한 관 계일 수밖에 없는 미국 항공사들은 적자에까지 허덕이고 있어 A-380을 도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유럽권에서는 각자 덩치불리기를 하며 유로존 항공망을 놓고 격돌하고 있는 에어프랑스와 루프트한자가 나섰을 뿐이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 항공과 대한항공뿐이다. 아직도 회생을 위 해 몸부림치고 있는 JAL은 꿈도 못 꿀일이다. A-380은 그 자체로 대한항 공이 세계적인 항공사로 거듭났다는 걸 증명한다. 역내 경쟁 항공사들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게 됐다.

조양호 회장은 말했다. "영업본부에선 비즈니스 클래스를 줄이고 이 코노미 좌석을 더 늘리고 싶어했지요. 제가 반대했습니다." 에어아시아 나 라이언에어 같은 저가항공사들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 지만 대한항공은 차별화 전략을 선택했다. 명품 항공사로 날아가고 있다. A-380에는 조양호 회장의 명품 철학이 곳곳에 배어 있다. 대한항공은 A-380을 도입한 항공사 가운데 이코노미 좌석을 가장 적게 배치했다. 대신 좌석 간 앞뒤 간격을 86.3cm로 늘렸다. 여느 이코노미 좌석에 비 해 10cm나 넓어진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기인 A-380을 타는 승객들이 비좁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대한항공이 A-380을 도입한 의미 가 퇴색할 수 있다. 대한항공 A-380의 이코노미 클래스는 다른 5개 항 공사의 A-380들보다도 질적으로 우수하다. A-380이라도 다같은 게 아니란 얘기다.


1층 맨 앞 퍼스트 클래스 역시 명품 공간으로 꾸며졌다. 여기에도 대한 항공이 자랑하는 코스모 스위트가 설치됐다. 좌석 한 개당 설치 비용만 1 억 원이 넘게 들어가는 코스모 스위트 좌석은 그동안 대한항공 보잉 747 기종의 퍼스트 클래스에 설치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A-380에는 코스 모 스위트가 12개 설치됐다. 좌석이 승객을 누에고치처럼 아늑하게 감싸 줘서 코쿤 좌석이라고 불린다. 덕분에 여행하는 내내 프라이버시를 철저 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 퍼스트 클래스는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특별한 손 님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걸 알고 배려한 결과다. 좌석 길이만 2미터가 넘 어간다. VOD 서비스는 물론이고 인터넷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 대한 항공은 A-380과 코스모 스위트를 통해 하늘에 6성급 호텔을 지었다.

관련기사



2층은 모두 프레스티지 클래스다. 조양호 회장은 비즈니스 클래스라는 판에 박힌 표현대신 대한항공만의 프레스티지 클래스라는 용어를 도입했 다. 일반 비즈니스 클래스보단 더 크고 아늑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 실제로 그렇다. 2층 전체에 걸쳐 94석이 마련된 프레스티지 클래스는 퍼스트 클래스도 안 부러울 정도다. 프레스티지 클래스에도 역시 코쿤 형 태의 좌석이 설치됐다. 퍼스트 클래스만큼 독립적이진 않지만 필요하면 옆 좌석과 칸막이로 좌석을 분리할 수도 있다. 앞뒤 간격이 넓어서 180도 로 좌석이 눕혀진다. 비행 내내 누워서 지낼 수 있을 정도다.

프레스티지 클래스의 또 다른 매력은 2층 맨 끝에 자리한 바 라운지에 있다. 승객들은 장시간 여행을 하면서 쌓인 피로를 바에서 칵테일 한잔을 하면서 가볍게 풀 수 있다. 바 라운지에는 바텐더 교육을 받은 승무원이 배치됐다. 보드카 베이스의 다양한 칵테일이 준비돼 있다. 탤런트 전광렬 이 추천하는 칵테일도 있다. 후미 계단을 내려가면 1층에는 면세품 전시 공간도 있다. 화장품부터 주류와 향수까지 4개의 전시대에서 60여 종의 면세품을 판매한다. 판매를 맡은 승무원은 "승객들이 이곳에 와서 면세품 을 둘러본 뒤 좌석에서 구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고 설명했다. 이제까지 기내 면세품 판매와 구매는 작은 책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면세품 안내 책자를 보고 승무원한테 구매를 요청하면 물건을 건네주는 식이 었다. 반면에 A-380 1층에 마련된 면세품 전시 공간에선 향수든 화장 품이든 실제로 설명을 듣고 만져볼 수 있다. 기내 면세품 판매가 늘어날 건 당연지사다. 이런 A-380 기내 서비스 구상은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대한항공 조현아(37) 전무의 작품인 걸로 알려졌다. 조현아 전무는 대 한항공에서 객실승무본부장과 기내식기판사업본부장과 호텔사업본부 장을 겸임하고 있다. 사실상 대한항공 기내 서비스를 총괄한다. 2층 바 라운지에서는 조현아 전무가 추천하는 앱솔루트 라즈베리 딜라이트도 마셔볼 수 있다.

하늘에 기업을 세우다

A-380이 독도 상공을 선회하자 모두의 관심이 창 밖으로 쏠렸다. 독도 를 육안으로 접하기는 대부분 처음이었다. 날개 끝으로 독도가 보였다. 16일 A-380 시승 행사에는 조양호 회장뿐만 아니라 조양호 회장의 장 녀 조현아 전무와 차녀 조현민(28)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IMC) 팀장, 아들 조원태(35)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장이 모두 참석했다. 조현 아 전무와 조현민 팀장은 비행기가 독도 상공을 선회하자 창 밖을 지켜 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조원태 전무는 기자들과 여러 얘기를 나누는 분 위기였다.

대한항공은 우선 A-380을 인천과 나리타 공항을 오가는 한일 노선 에 투입할 계획이다. A-380은 집채만 한 항공기인 만큼 대륙 간 노선을 날아다니는 게 일반적이다. 인천과 나리타 노선은 단거리 노선이다. 조양 호 회장은 설명했다. "더 많은 고객들에게 최고의 비행기를 체험할 기회 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대한항공은 그만큼 A-380의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단 얘기다. 대한항공은 올해 안에 추가로 도입할 4대를 7월 방콕, 8월 뉴욕, 9월 파리, 10월 LA 노선에 순차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앞으로 2014년까지 모두 10대의 A-380을 구비하면 대한항공은 전 세 계 주요 노선 모두에 A-380 기종을 투입할 수 있게 된다. 세계적인 항공 사이자 하늘을 나는 전세계적인 호텔 체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셈이다.

물론 대한항공의 A-380은 크기도 큰데다 프리미엄 전략으로 꾸며 진 탓에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일단 대한항공 A-380은 다른 5개 항공사의 A-380에 비해 좌석 수가 훨씬 적다. 에어 프랑스의 A-380은 538석에 이른다. 대항항공의 A-380에 비해 좌석 수가 100석도 넘게 많다. 인천과 나리타 노선의 평균 운임과 탑승률을 고려하면 당장은 손익을 맞추기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앞으로 A-380 이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게 되면 오히려 경제성에서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탑승률이 높은 노선에 취항할 경우 한꺼번에 더 많은 승객들을 실어 나르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양 호 회장은 말했다. "수요만 받쳐준다면 큰 비행기는 연료 효율을 통해 경 제성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조양호 회장은 더 일찍 A-380을 도입하고 싶어했다. 조양호 회장은 밝혔다. "사실 2008년 북경올림픽 이전에 인도받을 계획이었습니다. 하 지만 제조사 탓에 조금 늦어졌습니다." 북경올림픽으로 창출된 여행 수 요를 만족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결국 무산됐지만 결과적으론 행운일지 모른다. 2008년 이후부터 2년여 동안 전 세계 항공업계는 보편적인 수 요 침체에 시달렸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탓이었다. 반면에 대한항 공은 항공 시장 침체를 극복하고 2010년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2010년 대한항공의 매출액은 11조4,592억 원이었다. 영업이익은 1조 1,192억 원을 기록했다. 2009년에 비해 매출은 22%나 늘어났고 영업이 익은 무려 739%나 증가했다. 조양호 회장은 말했다. "지난해는 대한항 공 창립 이래 최고의 한 해였습니다." 대한항공의 2011년 매출 목표는 지난해보다 1조 원이나 늘어난 12조4,700억 원이다. 영업이익 목표 역 시 1조2,800억 원으로 2,000억 원 가까이 높여 잡았다. 대한항공은 이 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경쟁 항공사들보 다 훨씬 적은 좌석으로 A-380을 도입한 건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하며 스스로를 차별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하늘에 미래를 세우다

조양호 회장은 경영인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조양호 회 장은 2003년 2월 한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하고 8년 여만에 한국 재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업인으로 우뚝 섰다. 조양호 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이다. 김연아 선수와 함께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가장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방위산업진흥회 회장이기 도 하다. 정부가 미래 산업의 하나로 보고 있는 방위산업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에쓰오일 이사회 의장도 맡고 있다. 한진그룹은 에쓰오 일의 2대 주주다. 유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항공 산업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조양호 회장은 에쓰오일과 전략적, 재무적 협력 관계를 맺었다. 기자 간담회에서 조양호 회장은 앞으로의 항공 산업 전망과 유가 동향에 대해 질문을 받자 여유롭게 대답했다.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지만 100달러는 넘지 않을 걸로 보고 있습니다. 산유국들도 기름값이 지나치게 올라서 오 히려 수요가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에쓰오일 의 2대 주주여서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고 시장 예측도 하고 있습니 다. 게다가 대한항공은 구조조정을 통해 100달러 안쪽에선 충분한 경쟁 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A-380은 조양호 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하기 전부터 도입을 추진한 기획이었다. 10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때마침 대한항공은 위기를 넘어 고 공 비행을 하고 있다. A-380은 대한항공이 얻은 양 날개이자 새로운 엔 진이다. 조양호 회장은 말했다. "이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매니지먼트 기법이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앞선 시장을 내다보는 조양호 회장의 노력 이 위기를 넘어 기회를 만들었다.


FORTUNE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