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의 만남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이라는 비상 상황인 만큼 현재 정치적 현안보다는 대북관계에 집중됐다. 야당 측이 외교안보라인 교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방북 등에 대해 요청했지만 이 대통령은 사실상 거부했고 비상 상황에서 예산 문제 등에 대한 야당의 협조를 요청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우려를 여야 대표에게 전달하며 "지정학적 리스트 극복을 위해서는 여야가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국제신용평가사가 우리 신용등급을 지금은 유지하고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우리 정부에 현 상황과 관련해 많이 물어본다"며 "이런 위험 때문이라도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서 초청했다. 잘 협조해달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황우여 원내대표, 민주통합당의 원혜영 공동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이날 회담은 오전10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논란이 불거진 대북 정보력 및 조문단 파견 문제 등이 주요 화제로 올랐다.
여야 대표들이 정부의 초동 대처를 평가하고 이 대통령은 "정치권이 잘 협조해줘서 고맙다"며 수차례 사의를 표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회담이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회담이 진행되면서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한 정부의 정보력과 향후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이 대통령과 야당의 입장차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원 공동대표는 "국정원의 대북정보 수집ㆍ분석ㆍ평가능력 문제가 심각하다"며 "통일ㆍ외교ㆍ안보 라인의 교체ㆍ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고 김 원내대표도 "대북정보망이 무너졌다"고 가세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사항이 있다. 하지만 억울하더라도 이를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우리의 정보력이 걱정할 만큼 그렇게 취약하지 않다"며 한미 간 원활한 정보공유, 일본의 대북정보 공유 공식 요청 등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외교ㆍ안보라인 교체 요청에 대해서는 "정부에 맡겨달라"며 즉답을 피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대북정보체계 강화 필요성을 언급한 데 이어 김 위원장 사후 북한의 특이동향이 없는지를 물었고 이 대통령은 "특별한 이상징후는 없다"고 답했다.
조문 문제를 놓고도 서로의 입장차가 엇갈렸다. 원 공동대표는 "정부의 조의 표명은 잘된 일이지만 조문에 좀 더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과 자세가 필요하다"며 민화협을 중심으로 한 조문단 구성 필요성을 거론했다. 야당은 이날 회담에서 '민화협 조문단 파견'을 세 차례에 걸쳐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원 공동대표의 입장을 감안한 듯 완곡한 표현으로 난색을 표시했다. 이 대통령은 "조문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것은 답방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도 정부가 북한에 '조문단이 들어오라'고 했는데 '오지 않겠다'고 해 정부 대표가 개성에 가서 조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야당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다.
또한 원 공동대표가 "한중 공조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중국과의 소통 강화 필요성을 언급하자 이 대통령은 "우리와 중국은 소통이 잘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위원장 사망에 따른 정부 대응에 집중되던 대화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예산안으로 확대되자 이 대통령과 야당은 명확한 입장차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ISD 재협상을 잘 추진해달라"는 원 공동대표의 요청에 "국회가 촉구결의안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여야 대표가 이렇게 공고히 하면 되는 만큼 국격을 따져서 신중히 해달라"고 답했다.
회담에서는 내년도 예산안의 국회 처리 문제, 민생 문제 등도 거론됐으며 박 비대위원장은 "가스와 전기 같은 공공요금, 식료품 가격 인상 등으로 서민의 겨울나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소외된 분들에 대한 정부의 특별 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여야 회담에서 지난 18일 한일 정상회담의 '비화'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와 대북 관계 정보를 공유하기를 희망하는 일본 측의 의사 표시가 있었지만 위안부 문제를 집중 논의하느라 정보 교환 문제는 대답하지 않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동상이 세워진 것은 결국 일본 책임 아니냐고 했다"고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