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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잃은 도심 공공조형물
입력2011.10.27 17:05:39
수정
2011.10.27 17:05:39
신축·리뉴얼 건물 설치 작품 '서 있는 남자' 일색<br>건축주·심의위원 구상 작품 선호<br>인물상만 즐비… 예술·다양성 퇴색<br>"건물 특성 등 고려 작품 설치해야"
 | 공덕동 에스오일 사옥, 유영호 '빛을 든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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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계로5가 CJ신사옥, 신치현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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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조형물은 건물 외관에 나와있는 미술품으로 공공장소에서 대중과 폭넓게 공유하자는 목적 아래 설치된 작품들이다. 성공적인 공공조형물로 꼽히는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사옥의 '해머링 맨'(조너선 브로프스키 작)은 1분에 한번씩 내리치는 망치질 동작이 노동의 신성함을 의미한다고 알려지면서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참신한 미술작품이 건물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은 물론 지역 분위기와 주민 정서에까지 기여한 사례로 꼽힌다.
'해머링 맨'의 영향일까? 최근 서울 도심 일대에 신축ㆍ리뉴얼한 건물들의 공공조형물 상당수가 공교롭게도 '서있는 남자' 일색이다.
이번 달부터 입주를 시작한 중구 퇴계로5가의 CJ그룹 신사옥 앞에는 높이 11m짜리 대형 걷는 사람이 서 있다. 조각가 신치현의 작품으로 제목은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신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의 단위인 픽셀을 쌓아 입체적인 형태를 구축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이 건물에서 멀지 않은 지하철 을지로 3가역 앞 신축 오피스빌딩 '101 파인애비뉴' 앞에는 최근 구(求)를 높이 들고 서 있는 청동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제 재료를 용접해 이어붙인 플라즈마 기법으로 제작된 18m 대작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진조각가 최태훈의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이 인물상은 최근 입주를 시작한 마포구 공덕동 에스오일 사옥 앞에 설치된 유영호 작가의 신작 '빛을 든 사람'과 구도가 유사하다. 최 작가 작품의 강인함과 달리 유 작가의 인물상은 구슬형 분자구조가 얽힌 푸른색 사람이 미래 비전을 상징하는 흰색 구를 들어올리는 모양이다. 유영호는 근처 공덕동 KPX 빌딩 앞의'인사하는 사람(그리팅ㆍGreeting)'으로 더 잘 알려진 작가다.
문화적 다양성과 도심의 활력을 추구하는 공공조형물이 '서 있는 남자 인물상' 일색인 현상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준기 씨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남성임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들의 반복은 수직성, 남성성을 내세운 전근대적 남근주의의 패러다임에 치우쳐 '동어반복'하는 공공미술의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장소의 특성을 더 고려해 ▦수평성 ▦여성성 ▦접근가능성 등을 다양하게 포용하는 작품들이 제작될 여건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현상은 작가 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전문가인 건축주와 대중적 취향을 고려하는 심의위원들이 인물상처럼 구체적인 형상이 드러나는 구상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과 예술가를 연결해주는 컨설팅 관계자들이 공공미술에 대해 보다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술평론가 홍경한 씨는 "공공미술에도 트렌드가 있어 추상작품, 의인화한 동물, 우주적 이미지 등 시기별로 유행하는 스타일이 존재한다"며 "하지만 비슷한 스타일이 반복될 경우 공공조형물의 역할이 퇴색되고 지루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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