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 등재돼 있는 신사임당에 대한 소개다. 자식들 훌륭하게 잘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잘 해서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후세의 존경을 한몸에 받아온 위인이다. 그런 신사임당이 지난 2007년 5만원권 얼굴의 주인공으로 낙점되면서부터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 화폐 역사상 처음으로 지폐 인물에 여성이 등장했으니 여성계가 반길 일이었지만 일부에서는 현모양처라는 이미지에 가부장적 사고가 묻어 있고, 여성의 주체적 삶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과도 동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반발하면서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9년 9월부터 5만원권이 발행되기 시작했지만 신사임당의 수난사는 그치지 않았다. ‘5만원권을 찾으려면 마늘밭으로 가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일명 ‘마늘밭 사건’으로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불법 도박 사이트로 벌어들인 100억원을 몽땅 5만원권으로 마늘밭에 숨겨놓은 이 사건 말고도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운영권 비리사건, 여야 의원들에게 자금이 흘러 들어간 ‘청목회 사건’ 등 온갖 비리 사건에 어김없이 5만원권이 등장하면서 신사임당의 속앓이는 계속됐다.
급기야 5만원권이 시중에 풀린뒤 한은 금고로 돌아오지 않는 비중이 급증하면서 신사임당 입장에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집 나갔다’는 얘기까지 들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최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5월 말 기준으로 전체 화폐발행잔액 91조2,878억원 가운데 5만원권 지폐는 76.0%인 69조3,784억원에 달했다. 작년 말과 비교해 5조548억원이나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여전히 가지고만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지난 1~5월 5만원권 환수율은 48.2%로 1만원권(110.0%), 5,000원권(83.2%), 1,000원권(89.6%)보다 많게는 절반 이상 낮았다.
시중에 풀린 5만원권이 자꾸 어디론가 숨어드는 건 저금리와 주식·부동산시장의 불확실성 탓에 투자처가 마땅치 않아 국민들의 현금보유 성향이 높아진 것이 주된 이유다. 여기에 갑론을박이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면서 세무당국의 추적을 피해 소득이나 지출을 감추려는 심리도 한몫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정책 목표를 비웃듯 몸집을 키우고 있는 지하경제. 그리고 점점 더 행방을 알기 어려워지는 5만원. 이런 현실에 변명 한마디 할 수 없는 신사임당의 안타까운 상황과 맞물리면서 더욱 씁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