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년간 동경을 중심으로 라면만 먹고 다니는 여행을 기획했었다. 이왕이면 라면집뿐만 아니라 라면집 뒷골목의 다양한 풍물도 돌아 다녀보면서, 일본의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산보(散步)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원래 우리나라 말로는 ‘산책’이라고 해야겠지만 일본에서는 ‘산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라면산보를 통해 만났던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이야기들은 내 생애 몇 안 되는 가장 맛있고 즐거웠던 여행이었던 것 같다.
산보 중에 만난 특별한 시간들이 하나둘씩 아니 매우 많이 스쳐지나간다. 연극을 하다가 라면이 좋아 라면가게를 연 멋쟁이 콧수염 사장님, 120년이나 되서 너무 낡아 손님이 뚝 끊긴 공중목욕탕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신인 현대 미술가의 등용문이 된 네즈의 공중목욕탕 미술관, 된장의 모든 것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된장 레스토랑에서 만든 된장치즈와 와인 한잔의 추억, 여성고객들로만 무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미술관옆 갤러리 제빵점과 닭꼬치 구이냄새가 온 마을을 유혹하는 80년 전통의 이노가츠우라 공원 옆 닭꼬치구이점...
긴자의 유명한 점술가 일명 태양의 여자라 불리는 히노꼬상이 내 손금을 보고 “손금이 좋아 부자가 될꺼야~”라고 말해 주며 “진짜 맛있고 장사도 잘되는 유명한 맛집이 있으니 가보라”고 했다. 처음엔 기대도 안하고 찾아간 곳이 너무 장사가 잘돼 부러웠던 긴자의 생과일 파르페 전문점도 기억이 난다. 이뿐인가. 에도시대의 옛 거리 정취를 알기 쉽게 안내 해줬던 아사쿠사 인력거 청년, 돈도 안 받고 촬영에 협조해준 라면집 매니저 후쿠시마 씨 등을 비롯해 모두가 여행 중에서 만난 정말 멋진 인연들이었다.
이번 일본 라면 산보를 하면서 일본인은 참 라면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어느 곳에 가든지 라면집은 우리네 자장면 가게나 분식점처럼 거리마다 즐비했다. 그렇다고 일본 라면이 우리네 국수나 라면, 자장면처럼 한국인 입맛에 딱 맛있는 것은 아니다. TV에 소개되었던 유명한 라면집임에도 라면국물의 고기냄새가 너무 강해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던 곳도 있었다.
나는 동경 구석구석에 유명한 라면집 200군데를 직접 찾아가 먹어본 후 우리입맛에 맞는 라면집 33곳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의 라면특성과 가게의 역사, 에피소드를 정리하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 내용을 매주 수요일마다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매번 일본여행을 하면서도 늘 틀에 박힌 여행밖에 할 수 없었다면, 일본에 처음 여행 갈 계획이라면, 식도락 여행을 즐긴다면, 일본 라면을 좋아한다면 아주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맛있는 라면집을 고르는 데 자신이 생겼다. 어느 라면 가게의 사장이 “라면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 이번 동경라면산보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자, 매주 수요일에 맛있게 만납시다~
[석현수 PROFILE]
- 중앙대학교 아트센터 예술 감독
- 예술TV Arte 국악자문 PD
- 한국지역콘텐츠연구소 지역축제개발 자문팀장
- 일본영상교류센터 회원
- <일본어 작업의 정석> <동경라면산보>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