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단일화 논의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인물이 있다. 바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다. 김 후보는 ‘전향한 운동권 인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에 관한 TMI(Too Much Information·과한 정보)는 무엇이 있는지 알고 보면 흥미로울 김 후보의 TMI를 살펴봤다.
①'노동운동 1세대' 출신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김 후보는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사회운동에 첫 발을 내딛었다. 1971년 대학생 시위와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두 차례 제적된 그는 이후 구로공단의 드레스 미싱 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 현장에 투신했다. 이때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는 등 '노동운동의 1세대'로 불렸다. 이후로도 노동투쟁을 하다 신군부에 찍혀 갖은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했는데, 수많은 노동운동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가 생전에 그를 '내 아들'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런 그가 보수 정당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건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부터다. 이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당선되며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한편, 김문수의 아내 설난영도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1981년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하객보다 불법집회 여부를 감시하러 온 전투경찰이 더 많았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②'극우 정당' 창당
2020년 김 후보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함께 ‘기독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다. 전 목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한 방송에서 “기독자유통일당 창당이 극우의 길로 들어서게 된 지점”이라고 평가했다.
③차량은 2020년 식 더 뉴그랜저
김 후보는 본인의 청렴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활동해왔고, 2025년 6월 대선 후보자 재산 공개에서 총 10억 7000만 원을 신고했다. 그의 자산은 대부분으로 구성돼 있으며, 부동산은 배우자 명의의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아파트 한 채뿐이다.
④모두가 아는 유행어
김 후보는 2011년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관할 소방서에 직접 전화를 걸어 소방관에게 "나 도지사 김문수요!"라고 말하며 관등성명을 요구한 음성 파일이 공개돼 큰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전화를 받았던 소방관은 ‘소방공무원 재난현장 표준작전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과하기도 했다. 이 발언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고, 패러디의 소재가 됐다. 지난달 19일 한 방송에서는 배우 지예은이 “나 지점장인데”라는 말을 반복하며, 김문수 전 지사의 해당 발언을 풍자했다.
⑤역사관 논란
김 후보는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 국적은 일본이다. 그걸 모르시냐”라고 발언해 비판을 받았다. 지난 2월에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 후보에게 “일제시대에 김구 선생 국적이 뭡니까?”라고 묻자 “김구 선생의 국적은 중국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여러 가지 있는데 그 부분은 국사 학자들이 다 연구해 놓은 게 있다”고 답해 또다시 논란을 빚었다. 논란이 된 발언들은 국민의힘 2차 대선 경선 마지막 토론회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이를 문제 삼자, 김 후보는 "일본이 강제로 국적을 빼앗아갔다는 뜻"이라고 항변했다.
⑥대선 도전 ‘재수생’
김 후보의 첫 대선 도전은 2012년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경쟁에서 탈락했다. 특히 대선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대구·경북 지역 합동연설회에서는 한 지지자로부터 멱살을 잡히며 봉변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는 박 전 대통령의 대세론을 정면 비판하며 당원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이후 경기도지사로 활동하며 지방자치 행정에 애정을 보였고, 2018년에는 자유한국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박원순 전 시장에 패하며 낙선했다. 선거 패배 후 탈당한 그는 친박계 중심의 당 주류와 결을 달리하며 기독자유통일당·자유공화당 등 극우 보수 진영에 합류했다. 그리고 2024년 8월 윤석열 정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발탁되며 국정에 복귀했고, 제21대 조기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장관직에서 사퇴한 뒤 세 차례의 경선을 거쳐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