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는 지리적으로 거리가 멀어 현지 진출한 한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이곳을 미지의 시장이라는 의미에서 블루오션이라고 인식하고는 한다. 이런 생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중남미 시장은 미국이나 유럽만큼은 아니지만 여타 지역보다는 훨씬 높은 구매력을 갖고 있다. 중남미 시장의 평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 달러를 웃돌아 예로부터 유럽과 미국 기업의 중요한 시장이었다. GM·폭스바겐·르노와 같은 자동차 기업은 일찌감치 멕시코나 브라질·아르헨티나에 공장을 짓고, 보급형 제품을 내수용으로 공급해왔다. 고급형 제품도 인건비가 낮은 멕시코 등에서 조립해 선진국으로 역수출하는 공급망을 구축한 지 오래다.
도로·통신·전력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인프라) 역시 미국과 유럽 기업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 국영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조차도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과 기술 제휴를 맺고 있거나 민영화 과정에서 이들 기업에 넘어간 경우가 많다. 중남미에서는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 되면 유통망을 독점하거나 까다로운 인증을 무기로 유사한 제품의 공급자가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방어한다.
일반 소비재를 살펴보면 중국의 시장 지배력이 놀랍다. 특허권이나 상표권에 대한 보호 체계가 여전히 미흡한 편으로 의약품의 경우 복제약을 주로 생산하는 인도나 이란의 제약 업체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시장이 레드오션인 것은 아니다. 새롭게 창조되는 시장이나 기술 발전에 따라 급변하는 시장에서는 특히 우리 기업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진 예도 있다. 기존의 CCTV 제품은 중국산에 밀려 보급이 힘들었지만, 안면 인식이나 번호판 인식과 같은 최신 인공지능(AI)과 스마트 기술이 접목된 보안 장비의 경우는 치안이 불안한 중남미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환경에 관심이 커지면서 상하수도 같은 수자원 관리 모델과 쓰레기 재활용 모델 등에 관한 협력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다.
마약과 관련된 각종 조직범죄의 증가와 외국 어선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침범은 K방산 제품에 대한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신 기술을 탑재한 드론 제품과 원양 군함은 최근 개최된 현지 방위산업 전시회에서 지대한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제품은 단순히 제품의 판매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설계·관리·유지보수·기자재 연계 진출과 합작 생산 등 다양한 분야에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경쟁이 치열한 의료와 뷰티 분야에서도 기회는 있다. 이미징, 분자 진단, 첨단 소재와 같은 최신 기술을 접목한 제품이 그러하다. 한류의 확산도 긍정적이다. K팝·K드라마에 익숙한 중남미 젊은 층은 한국 제품에 호감을 느끼고 있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소비 확산 속도도 빠르다. 아이돌을 모델로 활용하거나 드라마 협찬을 통한 노출도 중남미 시장 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KOTRA는 중남미에서 방산·인프라·의료바이오·소비재를 진출 유망 분야로 선정하고 있다. 인증 획득 지원과 상표권 보호, 물류 지원, 현지 온·오프라인 유통망 입점 지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