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매출 10위 안에 들던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쉰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손님들이 마트 대신 전통시장으로 많이 올 줄 알았어요. 6, 7년 전부터는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쉬나, 월요일에 쉬나 전통시장에 손님 없는 것은 똑같습니다.”
19년째 대구 동구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신 모 씨는 25일 취재진과 만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가 전통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대구는 2023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전환했다. 이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공생하기 위해 손을 잡았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동구시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 매장에는 동구시장 내 맛집을 소개하는 광고판이 걸려 있다. 추석·설 대목에는 마트 전단지에 동구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이 함께 소개돼 동네에 배포됐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동구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규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마트가 쉬는 요일과 상관없이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동구시장에서 두부 가게를 하는 조 모 씨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우리 매출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며 “쿠팡으로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도 배달되고 식자재 마트에서 할인해서 파는 마당에 일요일에 마트가 쉬나, 문을 여나 (전통시장에는) 변화가 없다. 한마디로 죽을 맛”이라고 했다. 실제 일요일인 이날 동구시장에는 상당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영업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한창인 시간에 방문했지만 시장 내 식당에도 한두 테이블만 차 있었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 규제는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서 비롯됐다. 이 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은 대형마트에 공휴일 중 월 2회 의무휴업일을 정하되 이해 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평일로 바꿀 수 있다. 대구와 충북 청주시, 서울 서초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대형마트가 달마다 두 번씩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당초 법은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해 전통시장 및 전통 상점가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만큼 작동되지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통시장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시행된 초기인 2013년 1502개에서 2023년 1393개로 109곳이 감소했다. 전통시장의 하루 평균 방문객은 2019년 5413명에서 2023년 3994명으로 26% 급감했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점포도 2013년 대비 2023년 8곳 줄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을 막론하고 오프라인 상권이 모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 소비를 활성화하는 대신 오히려 소비를 온라인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신선식품을 비롯해 물건을 구매하는 게 익숙해졌다. 대형마트의 판매지수는 2013년 112.7에서 지난해 93으로 감소한 반면 온라인의 판매지수는 27.7에서 129.7로 급증했다. 판매지수는 통계청이 업태별 판매 금액을 조사해 지수화한 것으로 2020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다. 2020년을 기점으로 온라인의 매출은 아예 대형마트를 넘어섰다.
오프라인에서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식자재 마트의 공세도 거세다. 전통시장 앞에 식자재 마트를 열어 오프라인 구매 수요를 빨아들이는 행태가 곳곳에서 목격된다. 이마트에 이어 마트 업계 2위를 차지했던 홈플러스가 올 3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것 역시 대형마트에 비우호적인 규제 환경에서 새로운 유통 강자에 맞서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 점이 작용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유통 시장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경쟁 구도에서 온라인 대 오프라인으로 바뀐 지 오래인 만큼 낡은 규제를 손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현 시장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규제가 오프라인의 활로마저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복합 상권을 조성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등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을 넘어 외식·여가·오락 등을 즐길 수 있는 복합 쇼핑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대구 동구시장에서도 20~40대 젊은층을 전통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해 시장 건물 옥상에 테라스와 카페 등을 조성하고 키즈카페 등을 시장 인근에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데 실패했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다이소·올리브영과 같이 고객을 유인하는 핵심 점포(키테넌트)를 전통시장에 유치하는 식의 상생 방안이 필요하다”며 “대형마트 역시 전통시장의 키테넌트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구진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통 상권이 대형마트 인근에 있으면 대형마트의 주차장·화장실·수유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고 대형마트를 통한 집객 효과가 주변 상권에도 확산될 수 있다”며 “대중소 유통의 분리가 아닌 복합 상권의 개발을 통해 상생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