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증권 범죄는) 크게 해먹을수록 형량이 낮습니다. 신발을 훔치면 엄벌에 처하는데 수천억 원씩 해먹고 해외로 나가면 안전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달 말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증권 범죄에 대한 엄중 처벌을 예고하면서 이같이 발언했다. 국내에서 증권 범죄는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감옥을 다녀와도 남는 장사’라는 사회적 인식을 비판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등으로 주가조작이나 단기 매매 차익 취득 등을 더욱 강력히 제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10일 법조계 및 금융 당국 안팎에서는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 시세조종, 부정 거래 등 3대 불공정거래에 대한 처벌 수준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현행법상 이론적으로 3대 불공정거래에 대해서는 위반행위로 얻은 이득이나 회피한 손실(부당이득)에 대해 최대 9배까지 금전 제재가 가능하다. 처벌 조항을 수차례 개정하면서 벌금 4~6배, 과징금 2배, 몰수·추징 1배 등으로 점차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부당이득이 5억 원 미만이면 징역 1년, 5억 원 이상이면 징역 3년,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 등 징역형과도 연동되는 만큼 처벌이 가볍지는 않다는 평가다.
문제는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 중 하나인 부당이득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주가가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호재성 정보나 같은 업종의 다른 상장사 주가 흐름 등 외부 요인의 영향도 함께 받기 때문이다. 주가가 오직 불공정거래만으로 움직였다고 입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위반 행위가 인정되더라도 부당이득을 정확하게 산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몰수·추징이나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은 사례가 빈번하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이 약해서가 아니라 입증이 어려워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월 시행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부당이득의 산정 방식을 ‘총수입-총비용’으로 명시하면서 구체적인 유형별 산정 방식을 대통령령으로 위임했다. 10년이 넘는 논란 끝에 제도를 개선했으나 여전히 외부 요인에 의한 시세 변동을 객관적 판단이 힘든 ‘영향력’에 따라 평가하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빈틈이 수두룩한데 여론에 의해 처벌 수준만 강해지자 현장에서는 적용을 주저하는 역설이 발생한 셈이다.
징역 수준을 결정짓는 부당이득 산정 기준을 시행령에서 정하는 등 포괄적 위임입법금지 등의 위헌적 요소도 남아 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실무에서 가혹한 형량이 나온다면 반드시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나올 수밖에 없는 법률”이라고 꼬집었다.
유무죄뿐만 아니라 부당이득까지 정확하게 입증해야 하는 만큼 여전히 수사·재판 지연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꾸준히 나온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부당이득에 따라 처벌이 달라지다 보니 반성도 않는 피의자가 오히려 범행을 자백해 부당이득이 늘어난 피의자보다 형량이 작아지는 문제가 있다”며 “꼭 범죄 성립 요건으로 부당이득을 넣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부당이득을 형사처벌의 구성 요건으로 정한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규정이다. 현행법 체계가 오랜 기간 지속된 만큼 갑작스럽게 변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언젠가는 손을 봐야 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미국·일본·영국 등 주요국에서는 부당이득을 양형 요소로만 판단하고 있다.
다만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이 1년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실제 사건에 따라 적용 사례가 쌓여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과징금 배수를 높이는 등 처벌 조항만 강화하는 것은 유용하지 않다”며 “현행법이 한계가 있는 것은 맞지만 현장에서 꾸준히 적용하면서 사례를 축적해 보완할 점을 수시로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형사처벌 중심으로 이뤄지는 불공정거래 처벌을 행정 제재나 민사책임 등으로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형사처벌까진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실제 처벌되는 사례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 당국은 올해 4월부터 불공정거래 행위자를 대상으로 계좌 동결, 상장사 임원 선임 제한 등 비금전 제재를 통해 자본시장에서 퇴출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