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90명의 전세보증금 62억 원을 가로채 미국으로 도피했던 전세 사기범 부부가 보석으로 석방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방법원 형사5단독은 지난달 19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남모(49)씨 부부의 보석을 허가했다.
구체적인 보석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구속 만기 전 피고인 측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법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 피고인은 1심에서 최장 6개월까지만 구속할 수 있다.
남씨 부부는 2019년 4월부터 2023년 4월까지 대전 일대에서 '깡통전세' 수법으로 전세 사기를 벌였다.
이들은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90명의 세입자와 계약을 체결해 총 62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씨 부부는 2022년 8월 미국 애틀랜타로 출국해 고급 주택가에 거주하며 호화 생활을 이어왔다. 이들은 아들을 펜싱 클럽에 보내며 평범한 미국 현지 가족처럼 지냈다.
한국 경찰은 지난해 12월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고 미국 당국과의 공조 끝에 남씨 부부의 J1 비자가 취소되면서 결국 송환이 이뤄졌다. 이후 미국 이민세관국(ICE)은 이들 부부의 얼굴을 공개했다.
보석 심문 과정에서 남씨 측은 "구속 상태라 처분하지 못했던 법인 명의 부동산 5채를 매각해 피해를 변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이들의 석방 결정에 분노를 드러냈다. 한 피해자는 "우리 보증금을 들고 도망가 호화롭게 살던 사람들을 힘들게 찾아왔는데, 다시 거리로 풀어주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씁쓸하고 허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