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을 평화지대로 만듭시다.”
1987년 10월 1일, 소비에트연방 최서북단 무르만스크에서 당시 소련 지도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북극의 평화를 역설했다. 이 연설은 미국·소련 간 군사적 긴장과 첨예한 전략적 경쟁의 무대였던 북극이 국제 협력의 거점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이후 국제사회에는 국가 간 대립이나 경쟁이 북극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북극 예외주의’가 자리 잡았다. 1996년 미국·러시아·캐나다·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아이슬란드 등 북극권 8개국이 주도하는 북극이사회가 출범하면서 북극 현안을 둘러싼 국제 공조의 장도 열렸다.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 개발, 과학 협력 등을 논의하는 북극이사회는 ‘안보·군사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는 규정을 명문화했다.
하지만 ‘지구의 마지막 보물 창고’로 불리는 북극이 글로벌 경쟁·대립 구도에서 벗어난 예외 지역으로 계속 남을 수는 없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북극에는 아직 미개발 세계 잠재 석유 매장량의 13%, 천연가스 매장량의 30%가량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희토류 매장량도 엄청나다. 기후 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북극 해상 항로 개척도 현실화하고 있다.
북극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자 이 지역의 패권을 놓고 강대국들의 각축전도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은 2018년 북극 항로를 ‘일대일로’에 포함시키는 ‘빙상 실크로드’ 구상을 발표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린란드 병합’ 야욕을 드러냈다.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이미 원자력 추진 쇄빙선을 동원해 북극 항로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프랑스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북극 예외주의’를 끝내고 역내 균형을 뒤흔들었다”며 프랑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북극 국방 전략’을 처음으로 수립했다고 일간 르피가로가 이달 10일 보도했다. 북극 경쟁의 시대를 맞았다. 미래 경제·안보 패권이 달린 북극 쟁탈전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우리도 전략적 대응을 서둘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