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테슬라와 22조 7648억 원(165억 4416만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지난해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7.6%에 해당하며 반도체 부문 단일 고객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7일 자신의 X에 “삼성의 새로운 텍사스 공장이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 생산을 전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 가동에 들어가는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이 안정적인 수주처를 확보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33년까지 공급하는 이번 계약은 첨단 공정 수주 가뭄에 시달려온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활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TSMC에 이어 세계 2위이지만 대형 외부 고객을 유치하지 못해 매년 수조 원대 적자를 기록해왔다. 그러나 테슬라의 AI6 칩 계약을 따내면서 2㎚(나노미터)급 첨단 공정의 추가 수주 기대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 해결 직후 반도체 사업에서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킴으로써 ‘뉴삼성’ 신호탄을 쏘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28일 초대형 수주 소식에 힘입어 7만 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품목관세 부과를 예고했고 국내에서는 정부·여당의 규제 강화 입법과 법인세 인상 추진이 기업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중국 등 경쟁국들이 24시간 연구실의 불을 밝히며 맹추격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반도체 연구개발(R&D)에서 획일적인 주52시간 근무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대항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때 ‘반도체 제국’으로 불리던 인텔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기술 혁신 실패로 위기에 빠져 파운드리 사업 축소와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우리 기업들이 전략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끌어올리면서 한미 관세 협상에 필요한 대미 투자를 늘리는 역할도 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경영을 위축시키는 규제 족쇄들을 풀고 기업의 초격차 기술 개발 등을 위해 세제·예산 등의 전방위 지원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