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으로부터 경영 개선 권고를 받은 상상인저축은행의 매각 협상이 결렬됐다. 상상인 측은 OK금융그룹에 은행을 파는 방안을 철회하고 사모펀드(PE)에 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1년 넘게 끌어온 협상이 빈손으로 끝나면서 저축은행 업계의 재편 기대감도 꺾이게 됐다.
30일 금융계에 따르면 상상인저축은행은 최근 금융위원회에 OK금융과의 매각 협상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상상인 측은 대신 PE 측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함께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상인그룹은 2023년 금융위가 유준원 대표에게 상상인·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 지분 매각 명령을 내린 이후 매각을 추진해왔다.
협상 결렬은 양측의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제기된 상황에서 나왔다. 업계에서는 양측이 1100억 원 안팎에서 매매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하고 세부 사항에 대한 조율만 남겨둔 상태로 보고 있었다. 올 3월 경영 개선 권고까지 받은 상상인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새 주인을 찾는 것이 급했고 OK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자산 2조 3000억 원 규모의 상상인 인수를 계기로 업계 1위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경기·인천으로 영업권을 넓히는 장점도 있다. 특히 OK금융그룹 내부적으로는 상상인을 인수해 저축은행 업계 전반의 안정에 도움이 되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실제로 OK금융 측은 이달 안에 협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피력해오기도 했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상상인 측이 계속 시간만 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년의 협상 과정에서 여러 조건을 내세우며 협상력을 키우는 한편 PE를 포함한 다른 후보들과 물밑에서 매각 협상을 벌여온 것 아니냐는 것이다. 상상인 측은 금융위의 매각 명령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시간을 벌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상상인이 당국으로부터 적기 시정 조치를 받은 상황에서 다소 무책임한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상인 측은 OK금융과 매매 협상을 하는 와중에도 다른 사모펀드 측과 협상을 이어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상상인 인수가 무산되면서 OK금융이 추진해오던 페퍼저축은행 인수 작업도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OK금융 측은 당초 상상인저축은행과 페퍼저축은행을 모두 인수한 뒤 두 회사를 합병해 별도 법인으로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상상인저축은행 인수에 제동이 걸린 만큼 페퍼도 원점에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IB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OK와 페퍼 측의 인수 작업도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페퍼는 상상인과 달리 건전성에 당장 문제가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협상 중단으로 저축은행 업권의 구조조정 기대감도 사그라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라온저축은행이 KBI그룹 계열사인 KBI국인산업에 팔린 데 이어 상상인저축은행까지 매각을 눈앞에 뒀다는 예상이 나오면서 저축은행 업계의 합종연횡에 속도가 붙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상상인 매각이 물거품이 되면서 당분간 업계 인수합병(M&A) 시계도 멈추게 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부실 저축은행 처리 문제로 당국이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