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눈높이 실험 통해 이공계에 매력…공부팁도 얻었죠"

■고창 '서울대 과학봉사캠프' 가보니

자연대 학부생 139명 의기투합

교육여건 열악한 지역 학교 찾아

과학 실험부터 입시 전략 등 전수

"이공계 학과 진로 결정에 큰 도움"

지난달 30일 전북 고창군 고창중학교에서 '2025 서울대 자연과학대 여름 과학봉사캠프'가 열린 가운데 캠프에 참가한 고창 지역 중·고등학생이 과학 실험을 하고 있다. 고창=박민주 기자지난달 30일 전북 고창군 고창중학교에서 '2025 서울대 자연과학대 여름 과학봉사캠프'가 열린 가운데 캠프에 참가한 고창 지역 중·고등학생이 과학 실험을 하고 있다. 고창=박민주 기자




“아질산염 반응은 소변 속에 세균이 있는지를 확인할 때 사용해요. 정상적인 소변에는 질산염이 있는데요, 그람음성균은 질산염을 아질산염으로 환원하거든요.”



지난달 29일 전북 고창군 고창중학교 3학년 4반에서는 검은색 단체 티셔츠에 ‘우주’를 새긴 서울대 자연대생들이 소변검사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었다. 무더위 속 여름방학 기간이었지만 고창 지역 중·고등학생들은 책상에 앉아 눈을 반짝 빛냈다. 이번 실험의 목표는 우주비행사사가 어떤 질병에 걸렸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스포이드로 액체를 조심스럽게 소변 검사지에 떨어뜨리자 시험지의 색깔이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변했다. 학생들은 우주비행사가 ‘요로감염’에 걸린 것 같다고 적었다.

지난달 29일 전북 고창군 고창중학교에서 '2025 서울대 자연과학대 여름 과학봉사캠프'가 열린 가운데 캠프에 참가한 고창 지역 중·고등학생이 과학 실험을 하고 있다. 고창=박민주 기자지난달 29일 전북 고창군 고창중학교에서 '2025 서울대 자연과학대 여름 과학봉사캠프'가 열린 가운데 캠프에 참가한 고창 지역 중·고등학생이 과학 실험을 하고 있다. 고창=박민주 기자



이날 진행된 과학 실험 프로그램은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대 자연대가 주관한 ‘2025 여름 과학봉사캠프(과봉)’의 일환이다. 과봉은 2007년부터 매년 여름 서울대 자연대 학부생들과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 고등학생이 멘토·멘티를 맺는 교류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강원 태백·경북 영덕·경남 거제·전북 고창 4개 지역에서 열렸다. 139명의 학부생들은 6월부터 두 달 간 매일 같이 모여 구슬땀을 흘리며 프로그램을 완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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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은 이번 과봉에서 유일하게 지역 고등학생뿐 아니라 중학생도 멘티로 활동한 지역이다. 중·고등학생을 가리지 않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고취하고 멘토링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12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려 선착순으로 70명을 선발했을 만큼 경쟁률도 치열했다. 멘토링 과정에는 수시와 학업 조언뿐 아니라 올해부터 전 고등학교에 도입된 고교학점제에 대한 조언도 포함됐다. 멘토의 조언을 들은 강민찬(14) 군은 “고교학점제가 잘 이해되지 않아 멘토링을 신청했는데 어떤 수업을 들을지 감이 잡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달 30일 전북 고창군 고창중학교에서 '2025 서울대 자연과학대 여름 과학봉사캠프'가 열린 가운데 캠프에 참가한 고창 지역 중·고등학생이 멘토로부터 고교학점제에 대한 조언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대 자연대지난달 30일 전북 고창군 고창중학교에서 '2025 서울대 자연과학대 여름 과학봉사캠프'가 열린 가운데 캠프에 참가한 고창 지역 중·고등학생이 멘토로부터 고교학점제에 대한 조언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대 자연대


고창 고등학생 수는 지난해 기준 1509명으로, 비슷한 면적인 서울(고창 606㎢·서울 605㎢) 고등학생 인구가 20만 5784명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약 136배 이상 적다. 학생 인구가 적은 만큼 교육 여건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 한 해 평균 1~2명이 서울대에 진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창은 2021년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 89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북쪽에 오산학교, 남쪽에 고창고보(현 고창고)’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인재 배출의 고장이었지만 소멸지역에 꼽힐 만큼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과봉이 봉사활동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 ‘입시 고수’였던 서울대 자연대생들로부터 학업 비법을 전수받고 눈높이에 맞는 실험까지 함께 한 고창 지역 학생들은 이공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생명화학과를 지망하고 있다는 양은결(17) 양은 “직접 실험하면서 과학 원리를 체험할 수 있어서 신기했다”면서 “학교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캠프를 신청하게 됐는데 생명화학 관련 학과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굳어졌다”고 말했다. 황지원(17) 양도 “바쁜 여름방학 시기에 하루종일 재밌게 과학을 배워서 마치 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서 “입시철이 되면 화학과를 쓰려 한다”고 귀띔했다.

인재 유출로 ‘이공계 위기론’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청소년들에게 과학의 즐거움을 알리는 것은 미래의 인재를 확보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연대 학장단도 과봉에 참석해 지역 학생들과 소통을 이어나갔다. 고창을 방문한 남좌민 기획부학장(화학부 교수)은 “좋아하고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던 것이 과학이었기에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면서 “기존에 답이 없는 것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꾸준한 선행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서울대 자연대는 서울시 자원봉사 유공자 표창 수여식에서 표창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멘토로 이번 과봉에 참가한 유재민(21·화학부) 씨는 “아이들에게 2박 3일 동안 자연과학의 흥미를 느끼게 해주자는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아 기쁘다”고 전했다. 자연대 학생회장 김가연(22·물리천문학부) 씨는 “멘토와 멘티의 소통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고창=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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