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복제약(제네릭) 가격 제도를 통합하고 합리적인 약가 책정 모델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해외약가 비교 재평가’ 제도 시행을 앞두고 기존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도 제네릭 약가 인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관련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최근 가천대학교와 ‘의약품 약가 모델 재정립 방안(제네릭 의약품을 중심으로)’ 연구용역을 수의계약 방식으로 체결했다. 제네릭 의약품 가격 책정 방식에 대한 연구로 올 12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복지부는 지난해에도 ‘약가 상한금액 조정 기전 통합운영을 위한 정책연구’를 진행했었지만 기존 제도의 장단점 비교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오자 이번에는 실질적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연구가 일부 미진했다는 평가에 따라 후속 연구를 진행키로 했다”며 “약가 조정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 도출이 목표”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제네릭 약값 책정 모델을 들여다보는 것은 고령화로 건강보험 재정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국내 제네릭이 해외보다 비싸게 유통되고 있어서다. 복지부가 지난해 발간한 ‘제네릭 의약품 약가제도 개선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고혈압, 고지혈증 관련 국내 제네릭 가격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약가참조국(A8)보다 비쌌다. 고지혈증 약값은 영국보다 10배나 비쌌고, 당뇨약도 일본·이탈리아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A8은 신약 가격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국가들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스위스 등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보험급여 덕분에 환자가 실제 부담하는 가격은 낮은 수준"이라면서도 "국가 재정까지 고려하면 국내 제네릭 가격이 외국과 비교해 싸진 않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양한 제네릭 가격 인하 방안을 추진했지만 좌초했다. 특히 지난해 국내 제네릭 의약품 가격 산정에 해외 약값을 참고하는 ‘해외약가 비교 재평가’ 제도를 시행하려 했지만 업계 반발에 부딪혀 도입이 무기한 연기됐다. 업계에서는 기존의 복잡한 약가 인하·사후관리 제도가 중복 적용 가능성이 높고 예측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정부가 마련한 약가 사후관리제도는 10개로 이 중 △제네릭 등재 시 약가인하(동일제제 등재 시) △실거래가 약가인하제도(2년 주기) △사용량-약가 연동제(1년 주기) △급여적정성 재평가(1년 주기) △사용범위 확대 협상(급여기준 확대 시 사전 인하) 등 5개 제도가 현재 운영되고 있다.
제약업계는 단순한 약가 인하보다는 제네릭으로 확보된 수익을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보상 체계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이미 다양한 약가정책이 시행되고 있어 중복 적용 가능성이 높다”며 “산업계가 감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약가정책을 시행하고 관련 정책과 제도가 좀 더 예측 가능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제네릭 약가 손질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 역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서면으로 “국내 제네릭 약가는 해외 주요국 대비 높은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으로 최적의 약제 급여를 제공하기 위해 적정 수준의 약가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연구 결과를 참고하는 한편 제약업계 의견도 수렴해 약가 제도 개선과 산업 선순환에 필요한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