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각광받고 있는 K방산의 수출 실적이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방산 수출 규모는 윤석열 정부 첫해인 2022년 173억 달러로 정점에 달했는데 그 뒤 2023년 135억 달러, 지난해에는 96억 달러에 그쳤다. 정부와 방위사업청, 군이 기업들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한 결과다. 다행히 올해는 방산 수출이 200억 달러 이상으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민관군이 원팀으로 뛰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K방산 수출 확대와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방산 주요 4개국(G4) 진입’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사청장을 지낸 강은호 전북대 방산연구소장은 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K방산 수출은 가만히 놔둬도 잘될 것이라는 착시 현상을 빨리 걷어내고 정부와 방사청, 군이 경각심을 갖고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방산은 과학기술 혁신의 통로이자 부국강병의 첩경이라면서 앞으로 3년가량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자칫 K방산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강 소장은 미국과의 방위비 인상 협상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32% 수준인 국방비를 대폭 높이기 위해 투자와 복지를 줄이기는 힘들다”며 “여러 부처가 협업하는 형태로 국방부가 다른 부처의 기존 예산 항목을 사용하는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K방산 수출에서 착시 현상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한국이 해외로 수출한 무기 체계가 현지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게 1년~1년 반밖에 되지 않았다. 2022년까지 대거 수출 계약을 했던 것에서 현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방산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커지고 주가도 많이 올랐다. 계속 그렇게 갈 것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으면 3~4년 뒤에는 외려 급락할 수도 있다. 2022년 노르웨이에 대한 K2 전차 수출을 놓쳐 뼈아팠는데 정부의 역할이 상당히 아쉬웠다. 성능 점수에서도 앞서고 값도 독일제의 3분의 1에 불과했는데 결국 독일제가 채택됐다. 당시 국방부와 방사청에서 노르웨이 출장을 거의 가지 않았을 정도로 정부 지원이 부족했다. 민관군 원팀으로 움직여야 하고 나라마다 특화된 전략과 구상이 있어야 한다.
-왜 K방산 수출을 위한 민관군 원팀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전(前)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방사청에 무기 도입과 국내 전력 증강에 집중하고 국방부에 방산 수출을 지원하도록 했다. 그래서 전 정부 초대 방사청장의 취임사에 방산 수출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다. 방산 수출은 정부 간 협상이 중요한데 기업만 뛰는 형국이었다. 전 정부가 국방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깎아서 기업이나 연구자들의 의욕을 떨어뜨렸고 민군 협력 예산도 대폭 깎았다. 방사청 신기술 획득 사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형 구축함(KDX) 등 몇몇 사업에서 잡음이 컸는데 정부에서 제대로 조율하지 못했다.
△KDX나 다목적 무인 차량 등 몇몇 사업이 잘 진행되지 못하고 기업들끼리 소송전도 벌였는데 방사청 지도부가 직접 나서 조율해야 할 문제였다.
-앞으로의 3년을 K 방산의 크리티컬 타임(결정적 시기)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 등 유럽의 방산 강국들이 방산 생산 능력을 키우며 수출 계약을 맺고 있다. 이 국가들이 2~3년 뒤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에 뛰어들면 우리의 방산 수출이 힘들어질 수 있다. 정부와 군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고 앞으로 3년 내 미국 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지만 K방산 수출 증대를 위한 산학연정(産學硏政) ‘윈윈’ 협력 구조가 갖춰지지 못했다.
-방산 수출에서 맞춤형 접근도 중요한데.
△상대국에서 효능감을 느낄 정도로 기술 이전 또는 현지 합작 생산을 추진하거나 정비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한국이 미국의 무기 체계에 많이 의존하는 것처럼 정비·교육·운용 등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의존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K방산 협력국과 동맹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방산 수출에서 빠른 납기와 품질 대비 우수한 가격 경쟁력 등의 강점을 갖고 있다.
△산학연정 협업을 통해 K방산 자체를 브랜드화해야 한다. 유럽산은 물론 미국산만큼이나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전차·자주포·전투기를 수출하는 폴란드의 경우 그 나라에 무기 체계 운용성을 확실히 보장하고 운영 과정에서 겪는 애로를 해소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정부와 이미 운용 경험이 많은 군이 기업들과 운용 노하우를 공유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성능을 개량하면 상대국에도 유료로 계속 서비스하고 공동 R&D도 해야 한다.
-군의 무기 체계에도 인공지능(AI) 접목이 중요한데.
△이 대통령이 AI를 강조하고 있는데 방산에도 AI 전환(AX)이 중요하다. 우리는 업무망과 인터넷망을 분리하는 망 분리로 인해 빅데이터 구축이 힘들다. 기술 보호와 데이터 축적이 병행돼야 한다. 또 국방 분야 AI 반도체의 99% 이상을 수입하는데 하루빨리 국산화해야 한다. 감시·정찰 데이터를 바탕으로 드론을 원격 조정하고 그들 스스로 편대 비행하면서 공격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중국의 군용 드론·로봇 수준을 보면 아마도 미국을 능가하는 수준이 아닌가 추측한다. 우리는 드론 무기를 개발한 지 3년이 됐는데 감사원의 지나친 감사로 인해 아직 전력화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감사가 지나치면 시험·평가 등에서 담당자들이 몸을 사리게 된다. 우리가 튀르키예보다 무인기 개발을 10여 년 앞서 했는데 지금은 10~15년 뒤지고 있다. 드론과 유·무인 복합 체계 개발이라는 대세를 놓쳐서는 안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무인기·우주·사이버전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역량을 키우고 안면 인식 기술 등 민군 기술의 융합을 꾀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모험적·도전적 R&D와 상업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
-감시·정찰 자산을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쉽지 않을 텐데.
△전작권 전환이 꼭 필요하지만 사전에 기반을 충분히 구축해야 한다. 감시·정찰 능력 확보와 함께 방산 신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우주·양자기술 개발에 뒤처지지 않아야 현대전을 치를 수 있다. 우리가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KF21)를 개발했는데 첨단 항공엔진 개발 능력을 배가해야 6세대 전투기 개발 추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프랑스의 툴루즈 지역 같은 방산 클러스터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방산 벨트를 조성해 R&D 자금을 투입하고 방산연구소와 정부 출연 연구원, 대학 등이 기업과 협업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프랑스는 툴루즈 지역에 방산·항공 클러스터를 조성해서 에어버스 등 뛰어난 기업들이 많다. 미국도 실리콘밸리에 국방부 혁신실(DIU)을 두고 산학연정 협업을 하고 있고 노스캐롤라이나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방산 산학연 협력을 잘하고 있다.
-인수위 없이 출범한 새 정부가 방산 수출 확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대통령이 K방산 수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시스템의 혁신을 꾀해야 한다. 방사청과 국방부 등 K방산 라인의 인적 구성도 전력증강뿐 아니라 방산 현장의 특성을 잘 아는 사람들로 재편해야 한다. K방산 범정부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K방산을 브랜드화해 시장을 확대하면 이 대통령이 공약한 G4 방산 강국 도약도 불가능한 게 아니다. 이를 위해 R&D 예산 확대, 생태계 구축, 방산 컨트롤타워 구축, 방산진흥회의 주재 등이 차질 없이 이뤄져야 한다.
-방산 수출을 늘리려면 우리 자체의 첨단 무기 체계 구축도 중요한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킬체인,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 한국형 3축 체계를 신3축 체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보다 전략적으로 킬체인과 KMPR을 합쳐 반격 체계로 이름을 바꿔 유사시 적을 철저히 응징할 능력을 키우며 미사일 방어 체계도 확실히 구축해야 한다. 대미 의존적인 감시·정찰 자산을 비롯해 혁신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민군 기술을 통째로 활용하는 방산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잖으면 AI 등 첨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무기 체계가 조만간 구식으로 퇴보할 수도 있다.
-한미 협상의 주요 쟁점인 방위비 인상 문제와 관련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현재 GDP 대비 2.32% 수준으로 62조 원가량인 국방비를 3.5% 정도로 맞추려고 해도 약 30조 원이 더 필요하다. 부처들 사이 민관군 신무기 개발 협력, 도심항공교통(UAM)·드론·우주는 물론 도로·통신망 구축 사업의 국방 예산 활용, 교육부·고용노동부 등 다른 부처 예산을 활용한 국방 관련 예산 확보 등 여러 방안을 찾을 수 있다. 국방 분야가 경제성장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통로라는 점을 공유해야 한다.
◆He is…
1966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전주 완산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연세대와 미국 듀크대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각각 받고 연세대 공학원에서 기술정책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병무청·국방부 등을 거쳐 2006년 개청한 방위사업청으로 옮겨 2020년 말 내부 출신으로 처음으로 청장에 임명돼 K방산의 기반을 다졌다. 현재 전북대 교수 및 방산연구소장으로 재직하면서 국내 최초로 전북대 학부 과정에 첨단방산학과를 개설해 내년에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