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코스피 5000 시대’에 역행하는 세제개편안을 놓고 해외 투자은행(IB)들이 증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법 개정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배당·상속세율 인하 등 인센티브도 필요한데 ‘채찍만 있고 당근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증시 급락을 세제개편안 탓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반박한 것에 대해서도 국내외 증권사들은 반(反)시장적인 증세가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4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홍콩계 증권사 CLSA는 이달 1일 ‘이런, 세금 인상이라니(Yikes, tax hikes)’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세제개편안으로 한국 증시가 조정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CLSA는 대주주 양도소득세 요건을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원상 복구하고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 구간 세율이 원안인 25%보다 높은 35%로 정해진 것을 두고 시장 부정적 요소가 대거 포함됐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발표한 초안이 국회에서 완화되더라도 실망감은 불가피하다는 해석이다.
심종민 CLSA 연구원은 “상법 개정이 작동하려면 배당·상속세 인하 등 인센티브가 필요한데 이는 예상대로 논의되지 않았다”며 “배당소득 분리과세도 조건이 많고 최고세율 35%는 대주주에게 매력적인 수준이 아니라서 배당성향을 높이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외국계 증권사인 씨티는 한국의 세제개편안 논란을 이유로 아시아 신흥시장(EM) 비중을 중립으로 낮췄다. 씨티는 이번 세제개편안이 증시 밸류에이션(평가 가치)을 높이겠다는 정책 취지와 180도 상반된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씨티는 “그간 정책 기대감으로 코스피가 초과 수익을 낸 만큼 추가 하방 압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골드만삭스도 세제 개편안을 둘러싼 정책 불확실성이 당분간 지속되는 만큼 투자에 유의할 것을 주문했다.
세제개편안 불확실성 여파로 증시 대기 자금 성격인 투자자예탁금은 급증했다.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일 투자자예탁금은 71조 2971억 원으로 2022년 1월 27일 이후 3년 6개월 만에 최대다. 저점 매수 시점을 노리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걷히길 기다리는 자금이 늘어난 것이다.
국내 증권사들도 세제개편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유안타증권은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의 실증 분석 방식으로 한계소비성향을 계산한 결과 1일 국내 시가총액 감소액 116조 원은 잠재 소비 여력 8조 1000억 원을 줄인 것으로 추산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1차 예산 관련 국비 지출액과 똑같은 규모다. 김용구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독버섯 같은 극소수 반시장적 정책만으로도 코스피 5000 달성 등 정책 목표 달성은 요원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