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에서 7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가 9월 이후 금리 인하를 거스를 정도가 아니라는 반응이 나오면서 통화정책 완화에 대한 기대가 급속도로 재확산하고 있다. 관세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110년간 이어진 고용 통계 방식 변경을 검토하는 한편 ‘빅컷(0.5%포인트 금리 인하)’까지 요구하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12일(현지 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은 9월 기준금리가 25bp(bp=0.01%포인트) 인하될 확률을 94.3%로 반영했다. 이는 전날 마감 무렵의 85.9%에서 크게 오른 수치다. 12월까지 기준금리가 75bp 인하될 확률도 전날 45.0%에서 50.8%로 뛰었다.
금융시장에서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은 이날 공개된 7월 CPI 결과가 통화정책 방향을 흔들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노동부는 7월 전 품목 CPI가 전월 대비 0.2% 올라 6월(0.3%)보다 상승 폭이 0.1%포인트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식품·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보다 0.3% 상승해 6월(0.2%) 대비 오름폭이 컸다고 공표했다. CPI 결과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자 이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종합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다시 갈아 치웠고 이더리움을 중심으로 가상자산 시장도 강세를 보였다.
7월 CPI는 이달 21~23일 연준의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 미팅)을 앞두고 공개되는 마지막 물가지표라는 점에서 월가가 더욱 주목했다. 9월 연준의 0.25%포인트 금리 인하 기대는 이달 1일 미국 노동부의 7월 고용보고서 발표 직후 95% 수준까지 치솟았다가 CPI 발표를 앞두고 신중론이 고개를 들면서 80%대까지 떨어진 바 있다.
CPI 결과에 자신감을 얻은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금리 인하 압박 수위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서 “다행히 경제 상황이 워낙 좋아서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과 자만심에 빠진 이사회를 뚫고 나갔다”며 “파월 의장의 무능한 업무 처리에 대한 소송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관세 효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해온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를 겨냥해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새 연구원을 고용하라”고 타박하는 글도 올렸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역시 빅컷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화력을 보탰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CPI는 환상적이었고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도 사실이 아니었다”며 “우리가 생각할 것은 9월에 금리를 0.50%포인트 내리느냐 여부”라고 강조했다.
다만 연준 인사들은 상호관세가 이달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금리 조절에 여전히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제프리 슈미드 미국 캔자스시티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관세가 인플레이션에 미친 영향이 지금까지 미미하다고 해서 이를 금리 인하의 기회로 봐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통화정책이 적절히 조정돼 있다는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110년간 이어져온 미국의 고용 데이터 수집 방법까지 자신들에 유리하게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발표된 7월 고용 통계가 시장 예상을 크게 벗어나자 ‘통계 조작’을 이유로 노동통계국장을 경질했다. 새로 지명된 E J 앤토니 후보자는 이날 방송에 나와 “데이터 수집 방식이 바로잡힐 때까지 월간 고용보고서 발표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폭스비즈니스는 미국의 국가부채가 최근 관세 수입 증가에도 불구하고 사상 처음으로 37조 달러(약 5경 1230조 원)를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말 36조 달러를 넘어선 지 8개월도 안 돼 1조 달러(약 1385조 원)가 더 불어난 것이다. 초당파 비영리단체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에 따르면 경제 전문가들이 총부채보다 더 중요시하는 공공 보유 부채 규모도 약 29조 6000억 달러로 늘어 미국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