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디스플레이 없는 스마트글라스를 이르면 내년 말에 첫선을 보인다. 인공지능(AI)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스마트글라스가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디바이스(장치)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판단, 선제적으로 자체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르면 내년 말 출시를 목표로 자체 스마트글라스를 개발하고 있다. 스피커와 마이크·카메라 등이 부착됐지만 디스플레이 없는 메타의 ‘레이벤메타’ 제품과 흡사한 형태다. 메타가 2021년 처음 선보인 레이벤메타는 디스플레이 없는 스마트글라스 시장의 절대 강자로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제품은 프로젝트명 ‘해안’으로 알려진 삼성이 구글과 공동 개발 중인 증강현실(AR)글라스와는 별개의 제품이다. AR글라스는 마이크로액정표시장치(LCoS) 등 디스플레이를 통해 주변 환경 정보, 미디어 콘텐츠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가 탑재된다. 특히 구글과의 협업 제품은 구글의 이름을 달고 출시될 가능성이 높지만 개발 중인 스마트글라스는 삼성전자 브랜드로 출시된다.
디스플레이가 없는 제품은 기능상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대로 출시될 수 있어 스마트글라스 대중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평가된다. 디스플레이 없는 스마트글라스 분야를 주도해온 메타의 최신 제품 가격도 299달러부터 시작된다.
삼성전자가 자체 스마트글라스 개발에 나선 것은 스마트글라스가 스마트폰을 이을 넥스트 디바이스로서의 잠재성을 갖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AI 비서로 활용할 수 있게 다양한 기술들이 출시되고 있지만 사용자가 보는 환경을 디바이스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착용할 수 있다는 스마트글라스만의 장점은 스마트폰의 한계를 넘어선다. 한때 정보기술(IT) ‘액세서리’ 정도로 인식됐던 스마트글라스는 2022년 말 챗GPT가 출시되며 몸값이 훌쩍 뛰었다. 똑똑해진 AI의 성능만큼 스마트글라스의 활용도도 증대됐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기관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2535억 달러였던 스마트글라스 시장은 2032년 1조 625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3일(현지 시간) “디스플레이를 내장한 스마트글라스를 사용하면 하루 종일 다중 모드 방식으로 AI 시스템과 상호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보는 것을 함께 보고, 듣는 것을 함께 듣고, 하루 종일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스마트글라스가 주요 컴퓨팅 기기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세대 AR글라스 개발을 위해 우선 구글과 손잡기는 했지만 삼성전자는 향후 구글과 경쟁 관계에 놓일 것까지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경쟁 양상, 기술 발전 방향 등 변수에 따라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처럼 구글과는 협력 관계이자 동시에 경쟁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자체 라인업을 구축해 제품을 다양화하고 이를 통해 사업 노하우까지 키우면 향후 급성장할 스마트글라스 시장 대응에도 유리할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과의 협력에서 하드웨어 부문을 삼성이 담당하지만 구글 역시 내부적으로 하드웨어 연구를 진행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만큼 삼성도 자체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며 “이미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스마트폰·워치·링 등 갤럭시 생태계와 높은 호환성으로 삼성전자에도 유리한 점은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스마트글라스를 차세대 시장으로 낙점한 곳은 삼성전자와 메타뿐만이 아니다. 애플·샤오미 등 각종 글로벌 IT 기업들이 스마트글라스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애플은 이르면 내년 말 출시를 목표로 자사 첫 스마트글라스를 개발하고 있으며 샤오미 역시 올해 6월 말 첫 스마트글라스 제품 ‘샤오미 AI 안경’을 약 38만 원에 내놓았다. 메타는 올해 안에 디스플레이 달린 AR글라스 버전의 레이벤메타3 출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레이벤·오클리 외에도 프라다와 협업한 스마트글라스를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