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한 중국·러시아·인도 정상들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한 스킨십을 과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세 정상이 의도적으로 친분을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손을 잡고 나란히 SCO 회의장에 입장했다. 이들이 곧바로 향하는 곳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 있었다. 세 정상은 악수하고 둥글게 모여 통역들이 미처 도착하기 전부터 담소를 나눴고, 모디 총리는 대화 도중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 장면에 세 나라가 국제사회에 각기 보내는 메시지가 숨어있다고 분석가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은 미국이 '관세 전쟁'으로 세계적인 혼란을 야기한 것을 기화로 자신이 더 안정적인 세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려 하고 있다. 시 주석은 SCO 회의 연설에서 "냉전적 사고방식과 진영 대결, 괴롭힘 행동에 반대해야 한다"고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올바른 제2차 세계대전 역사관을 발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알프레드 우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지배하는 2차 대전 이후 세계 질서에 도전해 중국이 신뢰할 수 있으며 정당한 대안임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이번 회담에 앞서 모디 총리를 따로 만나 "양국은 협력 파트너이지 적수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면서 그간 대립 관계로 여겨진 인도와의 관계도 봉합하고자 애썼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압박과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전쟁 책임을 서방에 돌리며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알래스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했던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시 주석에게도 회담 내용을 자세히 알렸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러시아의 외교적 계산에서 중국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NYT는 분석했다. 또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국 원유 수출량의 3분의 1을 수입하는 인도와의 관계를 다지려는 모양새도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 50%의 관세 제재를 받은 인도는 중국·러시아와 친밀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에게 다른 중요한 우방이 있다는 것을 내보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모디 총리는 "다자주의와 포용적 세계 질서를 촉진하자"고 강조했다. 제3세계 리더격인 인도가 국제 문제에 더 큰 발언권을 얻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푸틴 대통령과 모디 총리는 공식 회담이 시작하기 전에도 따로 푸틴 대통령의 리무진에서 50분간 대화했다. 모디 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두 사람이 차량에 동승한 사진을 게시하며 "그와의 대화에는 언제나 통찰력이 넘친다"고 적는 등 관계를 과시했다.
이는 비동맹 중립 외교 노선을 택해온 인도로서는 이례적인 행동이다. 인도는 이전에도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회의에서 자리는 지켰지만, 그들과 친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려고 애썼다. 미국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 인도가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에 관세 공세를 취하자 인도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 나라 사이에 여전히 깊은 의심과 이해관계 상충이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는 여전히 국경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인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서방을 러시아로 대체하기는 어려우며, 중국은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 벵갈루루 소재 독립연구기관인 탁샤실라 연구소의 마노즈 케왈라마니 인도태평양 연구책임자는 "정치적 이미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며 "백악관은 자신들이 펴는 정책 때문에 다른 국가들이 자국 이익을 충족할 대안을 찾을 것이라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케왈라마니는 이어 "인도·중국·러시아 3국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데는 정치적 이미지가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