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화경] ‘살라미 슬라이스’의 달인들






아이에게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아이는 강둑에 앉아 맨발을 물에 담그기만 한다. 그러다가 몸을 일으켜 얕은 물가에서 걷기 시작하고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깊은 곳까지 왔다 갔다 한다. 어느새 강 한가운데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 어른들이 소리를 질러도 때는 이미 늦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셸링은 1966년 저서 ‘무기와 영향력’에서 “살라미 전술은 분명 어린아이가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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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에서 흔히 쓰이는 ‘살라미 전술’은 단번에 목표 달성을 노리기보다 상대가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목표를 잘게 쪼개 점진적으로 이뤄나가는 것을 말한다. 1940년대 헝가리의 공산당 지도자 라코시 마차시가 권력을 잡기 위해 단계적으로 적대 세력을 제거하는 전술을 이탈리아의 염장 소시지 ‘살라미’를 얇게 슬라이스해서 먹는 것에 빗댄 데서 생긴 용어다.

요즘 국제사회에서 ‘살라미 슬라이싱’의 달인을 꼽는다면 단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미국 공장을 공습하고 유럽연합(EU) 대표부 건물을 타격했다. 이달 9일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영공을 러시아 드론 19대가 침범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의 친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살라미 전술에 일가견이 있다. 남중국해에 슬그머니 인공섬을 짓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은 10일 스카버러 암초에 자연보호구역을 신설하며 실효 지배 강화에 나섰다. 중국은 이런 수법으로 서해 바다까지 위협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탄두부, 대출력 고체 엔진을 잇따라 공개했다. 점점 긴장감을 높여 북미 대화를 압박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살라미 전술이 의심된다.

넋 놓고 있다가는 국제 질서를 교란하고 안보를 위협하는 북중러의 전술에 휘둘리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이 안 웃는다고 우리도 화내는 표정을 계속하면 손해”라고 했지만 레드라인은 확실히 긋고 지켜낼 필요가 있다.


신경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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