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최근 한 달 사이 무서운 기세로 상승한 데는 외국인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를 중심으로 폭풍 매수에 나선 영향이 컸다. 여기에 챗GPT 개발사 오픈AI와의 협력에 대한 기대감과 반도체 업황이 예상보다 강력한 ‘슈퍼사이클’에 진입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더해지며 SK(034730)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주가는 장중 ‘40만닉스’와 ‘9만전자’를 찍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지며 10월에도 추세적인 상승세를 이어가 3700선까지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이날 하루에만 100포인트 가까이 상승하며 단번에 3549.21까지 도달했다. 특히 외국인은 데이터 집계 이후 최대 규모인 3조 1396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그 직전 최대 규모(지난해 1월 11일 2조 2962억 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개미들이 최대 규모인 3조 1396억 원어치를 팔아치운 것과는 반대 행보다. 이종형 키움증권(039490)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 시가총액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크게 오르면서 지수 전체 상승을 견인했다”며 “10월 코스피 전망은 상단 3650선까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오픈AI·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가파르게 확대되면서 서버용 D램, 낸드 수요가 유례없는 동반 호황을 맞았다는 진단이다. 두 반도체 대장주의 약진에 한미반도체(042700)(6.01%), 미래반도체(254490)(6.02%), 제주반도체(080220)(14.75%) 등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종목들도 줄줄이 불기둥을 뿜어올렸다.
노무라증권은 지난달 24일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기존 36만 원에서 54만 원으로, 삼성전자는 8만 4000원에서 12만 3000원으로 크게 상향했다. 노무라는 “서버용 D램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의 수요 회복 강도가 7월 말 제시했던 기존 예상치를 크게 웃돌고 있다”며 “현재 40~50% 수준인 범용 D램 영업이익률(OPM)은 2026년 종전 최고치였던 2017년 수준(70%)에 근접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수요가 낸드 수요의 40%를 차지해 2026년까지 2배 성장하고,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공급 부족과 맞물려 낸드 비트 수요가 연간 50% 이상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방한 중인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전날 글로벌 AI 인프라 플랫폼 구축 사업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투자심리를 더욱 자극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AI 인프라 투자에 더해 9월 수출 실적, 150조 원 규모인 국민성장펀드의 낙수 효과까지 반도체 업종의 호재가 이어지고 있다”며 “SK하이닉스가 10% 가까이 오른 것은 추석 연휴 동안 밸류에이션(가치 평가) 상승을 기대한 베팅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반도체뿐 아니라 상법 개정 수혜 기대감으로 금융·지주·증권 업종도 동반 강세를 보이며 활황장을 이끌었다. 삼성생명(032830)이 2.58% 올랐고 두산(000150)이 5.87%, SK가 6.22% 급등했다. 하나금융지주(086790)(2.20%), 신한지주(055550)(1.28%), 키움증권(3.90%), 미래에셋증권(006800)(3.33%)도 동반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에 KB증권은 올 4분기 코스피 예상 범위를 3200~3800으로, 다올투자증권은 3030~3650으로 각각 제시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내년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즈호증권은 “대형 기술 기업들이 ‘초지능’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AI 학습용 인프라를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다”며 “구글은 올 5월 개발자 행사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AI가 처리한 텍스트 데이터(토큰) 양이 두 배로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챗GPT·제미나이 등 초거대 AI 모델 훈련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메모리, 스토리지 같은 대형 설비 투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씨티그룹은 내년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 설비투자(캐펙스·CAPEX) 전망을 기존 4200억 달러에서 4900억 달러(약 688조 원)로 높였다. 엔비디아의 오픈AI 1000억 달러 투자 계획, 오픈AI의 코어위브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확장, 알리바바의 데이터센터 10배 증설 계획 등이 반영된 결과다.
이에 AI 산업 성장의 수혜가 반도체를 넘어 전력 설비, 토목·기계 장비, 원전, 데이터센터 리츠 등 밸류체인(공급망)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외국인의 매수세를 보면 한미 관세 협상 교착으로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안팎에서 등락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자리 잡고 있다”며 “반도체 소부장은 물론 변압기, 케이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인프라, 굴삭기 업체 같은 데이터센터 건축 장비 관련주로까지 수혜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