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일본이 해외 운전면허증 소지자의 일본 면허 취득 절차를 대폭 까다롭게 바꾸기로 했다. 단순 행정 절차를 넘어 외국인 혐오를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1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날부터 개정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을 시행하고 외국인의 일본 운전면허 취득 절차인 ‘외면전환’ 조건을 강화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민표(주민등록등본)’ 제출이 의무화된 점이다. 기존에는 단기 체류 중인 관광객도 간단한 서류만 내면 면허를 바꿀 수 있었지만 이제는 주민표가 없으면 아예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교통 규칙을 묻는 필기시험 문제 수도 기존보다 5배나 늘었고, 합격 기준 역시 정답률 70%에서 90%로 대폭 상향됐다.
과거에는 이 제도를 통해 일본 여행객도 손쉽게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사례가 많았다. 실제로 지난해 외면전환 제도를 이용한 외국인은 약 6만 8000명으로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국적별로는 베트남이 가장 많았고, 중국과 한국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제도가 악용되는 사례도 있었다. FNN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중국인들이 새벽부터 도쿄 면허시험장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중국 면허로 운전할 수 있는 국가는 10곳에 불과하지만 일본 면허를 취득하면 100개국 이상에서 운전이 가능한 국제면허를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일본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면 원래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뒤 학과시험(필기)과 기능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외국인 대상 필기시험의 문턱은 일본인보다 훨씬 낮았다. 예를 들어 중국 운전면허 소지자는 10문제 중 7문제만 맞히면 합격할 수 있었다. 심지어 호텔 주소만 기재해도 면허 취득이 가능할 정도였다. 관광비자 상태에서 일본 면허를 딴 한 중국인은 “중국에서 면허 따기는 어렵지만 일본 면허를 국제면허로 전환하면 간단히 취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취득한 면허가 교통안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중국인 운전자가 일으키는 교통사고는 해마다 100건 단위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18세 중국인 운전자가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하다 충돌 사고를 내 일본인 남성이 숨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해당 운전자는 음주 운전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런 사고가 잇따르면서 일본 정부는 규제 강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외국인 운전자가 관련된 사망·중상 교통사고 비율은 2016년 1.0%에서 올해 상반기 2.1%로 두 배 이상 치솟았다.
그럼에도 이번 조치가 외국인 혐오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 8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42만 8000명으로 전년 대비 16.9% 증가하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뛰어넘었다. 한국인 관광객도 66만 900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배타적 정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도쿄 신주쿠의 한 식당은 “싫은 것을 하면서까지 일할 생각은 없다”며 “한국인·중국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문구를 내걸어 논란을 빚었다.
전문가들은 “교통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명분은 이해되지만, 외국인 혐오로 번질 위험도 있다”며 “방문객 증가세 속에서 정책 균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