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감금·고문 사건이 급증하는 가운데 피해자가 현지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출동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지 경찰이 관련 신고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외교부 등 국내 당국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한 대목이다.
11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캄보디아 경찰은 피해자가 △현재 위치 △연락처 △건물 사진 △여권 사본 △얼굴 사진 △구조 요청 영상 등을 함께 제출해야 출동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제 3자 신고는 안되며 본인이 직접 신고해야 한다. 만약 한국인이 현지에서 알 수 없는 위치로 끌려가 감시를 받을 경우에도 스스로 위치를 파악하고 외부에 나가 건물 사진을 촬영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직접 구조 영상을 찍어보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구조 요청의 실효성이 감소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외교부는 이날 “과거 제3자 신고 후 출동했을 때 당사자가 감금 사실을 부인하는 사례가 반복돼 이런 절차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감금 상태에서는 모든 정보를 제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원·위치 정보만으로도 출동할 수 있게 절차 간소화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주 캄보디아 대사관은 “신속한 구출을 위해서는 본인 신고가 필수적이라는 캄보디아 경찰의 방침에 따라 신고자에게 이를 안내하고 있다”며 “신고자와 지속 연락하며 정확한 신고 절차와 방법을 설명 중”이라고 했다.
최근 캄보디아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납치와 감금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7월 캄보디아로 출국한 한 대학생은 8월 현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인은 고문으로 인한 사망이다. 최근에는 캄보디아에서 고연봉 정보기술(IT) 직장을 구하기 위해 출국했던 한국인 2명이 현지에서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 등으로 구타당하는 등 160여일 간 감금 폭행을 당하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의 도움으로 구출됐다. 이들은 현지 범죄단지에 바로 옆 방에도 한국인 3명이 있었다고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수 언론에서 우리 국민이 캄보디아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한 사건은 지난 8월 초 이미 보도된 사건과 동일한 사안으로, 현재까지 취업사기·감금 피해로 사망한 국민은 1명”이라고 밝혔다. 주캄보디아대사관은 캄보디아 경찰로부터 사망 사실을 통보받은 직후부터 신속한 수사와 용의자 처벌을 요청했으며, 유가족과 수시로 연락을 유지하며 수사 및 부검 절차를 안내했다고 전했다.
박 의원이 외교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캄보디아에서 취업 사기 후 감금을 당했다며 공관에 신고한 사례는 330건에 이른다. 이에 박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일어나는 피해 사례에 비해 재외공관의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영사조력법 개정으로 재외국민 보호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 의원이 지난달 30일 대표 발의한 영사조력법 개정안은 재외국민 사건 사고에 대한 사전 모니터링 및 평가를 진행하고 실종 신고에 적극 대응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박 의원은 “지금도 구조를 기다리는 우리 국민과 한국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라며 “국무조정실, 외교부 등 관계 기관이 적극적인 업무 협조를 통해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확보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캄보디아 범죄 단지로 들어가는 자발적인 국민이 늘어나는 점이 문제라고 꼽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캄보디아의 고수익 일자리 이야기를 믿고 입국해 스캠센터에 들어간 국민이 많아졌다”며 “취업사기 피해자 외에도 스캠 활동을 인지하고도 자발적으로 가담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구출된 후 영사조력을 거부하고 귀국 뒤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이런 자발적 가담자는 국내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잠재적 보이스피싱 가해자로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끝으로 외교부는 “정부는 범부처 차원에서 캄보디아 등 해외 스캠센터 피해를 예방하고 관련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