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의견을 표시한 현수막을 훼손한 행위는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에 기초한 것이 아닌 단순 의사 표현의 일환으로 일회성 현수막을 설치한 행위는 업무방해죄가 보호하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업무방해 및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지난달 11일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의 한 재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A씨는 지주협의회 회장이던 B씨와 재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다. B씨가 지주협의회 입장을 홍보하기 위해 영등포구 일대 가로수에 현수막을 설치하자, A씨는 2019년 9월 해당 현수막 3개의 끈을 과도로 잘라 떼어냈다. A씨는 재개발 관련 조합원 등에게 지주협의회 입장을 홍보하는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쟁점은 B씨의 현수막 게시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인 ‘업무’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업무방해 및 재물손괴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인 ‘업무’란 직업이나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하여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나 사업을 말한다”며 “단순한 의사 표현의 일환으로 일시적·일회적으로 현수막을 설치해 사실이나 의견을 알리는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B씨가 게시한 현수막 내용은 지주협의회의 구성·운영·활동 등 본래 업무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추진위원회에 대한 반대의견을 표시하거나 소송·사건 진행 사실을 알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며 “이는 회장으로서 본래 업무수행과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사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