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열린송현] 부동산 정책, 시장 억누르기 아닌 미래 설계에 집중해야

■ 고진수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임차인 11%, 소유·거주 분리된 불일치 가구

10·15대책, 일치 강제해 시장 전체 위축 우려

투자 매력 억제보다 충분한 주택 공급 시급해

고진수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고진수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이달 15일 발표된 이재명 정부의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은 규제 지역 확대, 대출 규제 강화, 부동산 감독 기구 설치를 골자로 한다. 특히 풍선 효과 차단을 위해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포함하는 전방위적 규제가 단행됐다. 집값 상승이 두드러지지 않은 지역의 볼멘소리를 뒤로 하고 부동산 중개소들은 막차 수요로 분주했다. 하지만 앞으로 주택 시장은 거래 급감, 매물 잠김, 전세난 심화 등 극도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주택은 '사는 것(Buy)'이 아닌 '사는 곳(Live)'이라는 말은 주택을 투자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 보아야 한다는 당위를 담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이 가구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다르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차인 중 약 11.2%(수도권은 11.7%)는 주택을 소유하면서도 다른 주택을 임차하고 있는 '무늬만 세입자'다. ‘불일치 가구’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수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주택 시장에서 소유와 거주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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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거주의 분리는 자산 가치 상승을 추구하는 투자 수요와 생활 편의를 추구하는 거주 수요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투자 관점에서는 가격 상승이 기대되는 특정 지역의 아파트를 선호한다. 반면 실제 거주는 생애 주기에 따라 달라진다. 청년은 직장 근처를, 육아기에는 부모 가까이에, 학령기에는 교육 환경이 좋은 곳을, 노년기에는 의료 접근성이 우수한 곳을 원한다. 투자 최적지와 거주 최적지가 일치하지 않을 때, 집값 상승이 기대되는 곳의 주택은 보유하고 실제 거주는 생활 여건이 맞는 곳에서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전세 제도는 임차인의 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이러한 전략을 가능하게 했다.

이번 부동산 대책은 소유와 거주의 일치를 강제하면서 시장 전체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주택을 소유하려면 거주해야 하는 규제가 더해진 것도 문제이지만 무주택 임차인들이 직면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실거주 요건 강화로 매매 시장이 위축되면 진입 기회 자체가 차단되고 임대 물량은 급속히 줄어들 것이다. 남은 물량마저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면 집 없는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은 가중될 것이다. 자산 형성기의 청년층과 신혼부부들은 주거비 부담과 사라진 매물 사이에서 주거 사다리의 첫 단계조차 밟지 못할 수 있다.

만약 거주 수요와 투자 수요를 일치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면 ‘사는 것(Buy)’의 매력을 떨어뜨리거나, ‘사는 곳(Live)’의 매력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특정 지역의 주택을 구매할 여력이 있는(Pay) 사람들만의 시장을 만들어 전체를 얼어붙게 할 위험이 크다. 이는 선호하는 입지에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늘리겠다는 9.7 대책 당시 정부의 주장과도 모순되며, 도시 정비의 속도를 높이고자 하는 서울시 정책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진정한 해법은 투자 매력을 억제하기보다 거주지로서의 매력을 높이는 데 있다. 일자리, 대중교통, 교육, 문화, 복지 인프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살고 싶은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을 억누르는 대책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정책이다. 오늘 주택 시장이 멈춰 선다면, 내일은 그 시장을 건강하게 움직일 근본적 성찰이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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