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발전설비 3배 늘 때 발전사는 660배 증가…“전력시장 시스템 바꿔야”

전력거래소 회원사 6618곳인데…시스템은 23년 전 그대로

한전 자회사끼리만 사후 원가 보상…“민간은 손해 지속 확대”

1월 9일 인천 서구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1월 9일 인천 서구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001년부터 2024년 사이 발전 설비 용량이 약 3배 늘어나는 동안 발전 사업자 수는 약 660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 시장의 성격이 한국전력공사와 한전 자회사 중심의 중앙집중식에서 민간발전사 중심의 분산식으로 변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시장 변화에 맞춰 전력 시장 제도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20일 민간발전협회와 자원경제학회·에너지법학회가 함께 개최한 ‘전력시장 선진화를 위한 법적 기반 강화방안’ 세미나에서 “국내 전력 도매 시장 제도는 서른 살 성인이 초등학생 옷을 입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채택하고 있는 비용기반 변동비 반영 시장(CBP)은 한전이 소수의 자회사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 구조를 전제로 도입된 제도인데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소규모 민간발전사가 급속도로 늘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한전이 발전 기능을 자회사로 분리했던 2001년 한국의 총 발전 설비 용량은 50.9GW였다. 한전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거래시장 회원사는 10곳에 불과했다. 5대 화력발전사와 한국수력원자력, 수자원공사 등을 포함한 숫자다. 반면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24년 12월 기준 한국의 발전 설비 용량은 153GW로 3배 넘게 늘었다. 전력거래시장에 등록한 회원사는 6618곳으로 23년만에 660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달 기준 설비용량 20MW 이하의 비중앙 발전기 수는 16만 8000곳이 넘는 등 전력시장에 참여하는 주체가 크게 늘어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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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교수는 이같은 상황에서 현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CBP제도는 크게 네 단계를 거쳐 운영된다. 우선 정부와 한전, 전력거래소 등이 예상 수요를 바탕으로 일일 급전계획을 수립한다. 이후 이에 맞춰 입찰시장에서 전기를 판매한다. 이때는 시장에서 결정된 계통한계가격(SMP)이 적용된다.

이때 SMP는 사실상 변동비만 반영되므로 당국의 지시로 작동을 멈춘 석탄발전소나 일일 수요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량을 조절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등은 강제로 수입이 감소한다. 이에 한전과 한전 자회사들은 연말에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해 서로 수익을 조절한다. 한전이 최종 정산을 통해 자회사의 총괄원가를 보전하는 구조다.

문제는 민간 발전사에는 이같은 형태의 원가 사후 정산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수많은 민간 발전소들은 송전제약이나 출력제한으로 발전소를 돌리지 못해도 재무적 손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 민간발전협 관계자는 “전력거래소 회원인 민간 발전사들이 비용평가규정 개정을 제안할 수도 없고 관련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도 없다”며 “손실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CBP 제도가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 발전에도 맞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과거에는 일일 최저 전력 수요 만큼은 발전기를 100% 작동시키는 ‘기저전원’으로 운영하고 전력 수용의 일교차를 LNG와 같은 가변전원으로 감당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가변성에 맞춰 다른 발전기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낮 기간 전력 수요 증가 폭보다 태양력 발전량 증가 폭이 더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손 교수는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10%에 불과한데도 유럽보다 계통 운영이 훨씬 어렵다”며 “수력발전소 비중이 적고 다른 나라와 전력거래가 어려운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국토의 동서 폭이 좁은 데다 태양광 발전소 대부분이 호남에 몰린 것도 계통 관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유럽이나 미국, 중국은 동부와 서부의 태양력 피크 시간대가 3~4시간 차이 나니 남는 전력을 다른 곳으로 옮겨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손 교수는 “전력수요와 태양광 발전량 변화에 맞춰 전력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고 줄이는 일이 상당히 중요해졌다”며 “그런데 현 전력 도매 시장에는 유연성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발전량을 조절하는 과정은 상당한 비용이 드는데 이를 보전하지 않고 출력지시만 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손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목표대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100GW로 확대하려면 송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상당한 수준으로 확충해야 하는 것은 물론 유연성 전원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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