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英 행동주의 펀드, LG화학 공습…"이사회 개편하라" [시그널]

팰리서캐피털 "주가 74% 저평가"

자사주 매입 등 4대 개편안 제시

LG화학 대산사업장 전경. 사진 제공=LG화학LG화학 대산사업장 전경. 사진 제공=LG화학




영국의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털이 LG화학(051910)에 이사회 개편과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며 주주행동주의에 본격 나섰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팰리서캐피털은 전날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25 액티브·패시브 투자자 서밋’에서 LG(003550)화학의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제언을 발표했다.

팰리서캐피털은 LG화학의 지분을 1% 이상 보유한 주주라고 소개하면서 네 가지 개편안을 제안했다. 먼저 이사회 구성을 개편하고 주주 이익에 부합할 수 있도록 경영진에 대한 보상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이사들은 경영 전문성과 자본 배분 경험이 부족한 학계 출신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수익률을 지향하는 강력한 자본 배분 체계 시행, LG에너지솔루션(373220) 지분을 활용한 자사주 매입, 장기적인 주가 저평가 관리 프로그램 등을 제시했다.

팰리서캐피털은 LG화학 주식이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저조한 수준인 순자산가치(NAV) 대비 74%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며 69조 원(약 483억 달러) 규모의 가치 격차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팰리서캐피털은 국내에서도 유명한 엘리엇투자운용의 홍콩부문장을 지낸 제임스 스미스가 2021년 설립한 행동주의 펀드다. 팰리서의 운용 자금은 지난해 말 기준 약 10억 달러(약 1조 4300억 원) 수준이다. 2023년 삼성물산(028260), 지난해 SK스퀘어(402340)의 지분을 사들인 후 주주 제안에 나서기도 했다.




팰리서캐피털은 LG화학 주주 제안을 전개한 배경으로 심각한 저평가를 꼽았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지분 81.84%(상반기 말 기준)를 보유하고 있는데도 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단순 석유화학 기업으로만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주주 제안을 위해 1% 남짓 지분을 갖고 있는 팰리서캐피털이 과거 삼성물산과 SK스퀘어에 대해 행동주의에 나선 뒤 차익 실현을 하고 떠난 사례에 비춰 ‘먹튀’ 가능성도 다분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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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LG화학 주가는 13.01% 상승한 39만 1000원으로 장중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 제안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LG화학의 기업가치 상승이 이뤄질 수 있다고 투자심리가 개선된 영향이다.

팰리서캐피털의 설립자인 제임스 스미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팰리서캐피털은 회사 및 최고 경영진과의 건설적인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LG화학이 완전한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을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열린 대화를 지속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팰리서캐피털은 LG화학의 시가총액을 76조 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날 기준 27조 원과 비교하면 저평가가 해소될 경우 세 배 가까이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실제로 행동주의가 기업과 건설적인 대화를 통한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질지에는 물음표가 뒤따른다. 팰리서캐피털은 지난해 SK스퀘어의 지분을 1% 넘게 확보하면서 체계적인 자본 배분 원칙과 주주 이익과 연계된 경영진 보상 시스템 도입 등을 제안했다. 이후 SK스퀘어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던 팰리서캐피털은 지난해 11월 “SK스퀘어와 건설적인 관계를 유지해갈 것을 기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지분을 매각한 뒤 주주 제안을 철회했다.

2023년에는 삼성물산을 상대로 자사주 소각·지주회사 체제 재편 등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 흔들기도 했다. 당시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배구조 문제로 주가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했는데, 정작 주주총회에서의 표 대결은 참여하지 않았고 조용히 사라졌다.

최근 5년간 LG그룹을 겨냥했던 행동주의 펀드는 크게 화이트박스와 실체스터 2곳이다. 이들은 단기간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 뒤 매도하면서 수익 극대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화이트박스는 2018~2020년까지 LG 지분을 약 1% 보유했다. 이들은 2020년 12월 현재의 LX그룹과 계열 분리에 반대하며 이사회에 “LG그룹이 가족의 경영 승계를 위해 주주가치에 부정적인 의사 결정을 단행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계열 분리안은 이사회를 통과했고 2021년 상반기에 보유한 주식 대부분을 매도했다. 취득 시점 대비 이들의 수익률은 최소 30% 이상으로 추산된다.

반면 영국계 투자회사 실체스터는 2023년 4월 LG 지분 5.02%를 매입한 후 10월 현재 7.03%로 보유 지분을 늘린 2대 주주다. 이들은 LG생활건강(051900) 지분 6.11%를 보유한 3대 주주이기도 하다. 실체스터는 경영과 관련해 개입하지 않는 대신 적극적인 주주 환원을 요구했다. LG가 보유한 순 현금이 약 1조 7000억 원이고 자회사 배당 수입도 있는데 주주 배당이 지나치게 낮다면서 현금배당률을 올리고 중간배당 도입을 제안했다. 2023년 이후 현재까지 실체스터의 수익률은 45% 이상으로 추정된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행동주의 펀드가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기업의 중장기적인 가치 상승이지만 결국 핵심은 단기적인 이익에 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병준 기자·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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