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가 왔다. 꺼져라. 재판을 속개하라.”
4일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을 ‘침묵시위’로 맞이한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정적을 깨고 이 같은 발언이 터져나왔다. ‘민주주의가 사망했다’는 의미로 근조 리본을 달고 검은 마스크를 쓴 국민의힘 의원들을 마주한 이 대통령은 미소를 띠며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날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야당 없는 ‘반쪽’으로 진행됐다. 전날 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이 12·3 비상계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국민의힘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 행사를 보이콧한 것이다. 본회의장 입장을 거부한 국민의힘은 “이재명식 정치 탄압, 폭주 정권 규탄한다. 더불어민주당식 정치 보복 국민들은 분노한다”고 외치며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여당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정문에서 발언대로 향하는 길목 양쪽으로 도열해 대통령을 환호로 맞이했다. “좀 허전하다”는 발언으로 시작된 22분간의 대통령 연설 도중 여당 의원들은 총 31번의 박수를 보내는 한편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의원도 눈에 띄었다. 이 대통령이 이번 한미·한중 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하며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총력을 다했다”고 하자 함성을 쏟아내기도 했다.
연설 종료 후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A급이고, 시정연설도 A급이었다”며 “내년도 728조 원 예산은 국민의 혈세인 만큼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당에서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 기한 안에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썼다.
이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 직전 우원식 국회의장, 민주당의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약 20분 동안 환담을 나눴다. 역시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불참했다.
여당의 사법 개혁 표적이 된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해 김상환 헌법재판소장, 최재해 감사원장,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도 참석했다. 이 대통령이 “우리 대법원장님을 포함해 헌재·선관위·감사원 등 기관장 여러분께서 많이 관심을 갖고 (APEC을) 지원해 주셔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하자 조 대법원장은 “예, 예”라고 짧게 대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