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추세츠공대(MIT), 캘리포니아 공대, UC 버클리.’
이들 대학교는 ‘2026년 더(THE) 세계대학 랭킹’에서 각각 2위, 7위, 9위를 기록한 세계적 대학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미국 연방정부와 함께 ‘연방정부 지원 연구개발센터(FFRDC)’를 운영 중인 대학이자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연구원의 창의성을 결합해 연구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린 대학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글로벌 대학이 부재한 우리나라 또한 세계적 대학 육성을 위해 미국의 대학 성장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대학은 ‘톱100’에 서울대(58위), 한국과학기술대(KAIST·70위), 연세대(86위), 성균관대(87위) 등이 이름을 올렸지만 글로벌 대학과의 연구 역량 및 관련 인프라 격차가 상당하다. 교육계에서는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와 관련해 “글로벌 10위 안에 들어갈 한국형 MIT 1개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할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서울대 자연대의 ‘미국 대학-연방 연구소 모델 심층 비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정부 부처가 특정 대학과 연구개발센터를 공동 수립하는 방식으로 대학의 연구 역량은 물론 국가 경쟁력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MIT 링컨랩’은 미국 국방부(현 전쟁부)가 1951년 미국 공군 방어시스템 개선을 위해 설립했으며 MIT의 연구 역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1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국방부는 링컨랩에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장기 용역을 맡기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 중이며 링컨랩은 올 4월 미국 공군과 12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링컨랩에는 무려 44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 예산만 10억 1000만 달러 수준이다.
링컨랩의 운영 방식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링컨랩 기술 전문가들은 학부생 대상의 공학 강좌를 개설해 각종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으며 학부생 대상 유급 인턴십 프로그램 ‘UROP’를 통해 학생의 사업화 역량 제고에도 애쓰고 있다. 링컨랩 연구원이 MIT 총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연구 자율성 제고를 위한 장치도 주목할 부분이다. MIT와 링컨랩이 공동벤처 형태로 설립한 스타트업 육성 조직 ‘비버웍스(Beaver Works)’는 자율 잠수정, 드론, 초소형 위성 등을 만들었으며 링컨랩은 이 같은 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100개 이상의 ‘스핀아웃’ 기업을 배출했다.
1936년 설립된 ‘제트추진연구소(JPL)’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후원하며 캘리포니아 공대가 관리를 담당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예산 규모는 연구 프로젝트 등에 따라 매년 바뀌지만 2021년의 경우 24억 달러에 달하기도 했다. JPL 직원은 사실상 캘리포니아 공대 직원으로 분류되며 JPL 연구원이 캘리포니아 공대 겸임 교수를 맡기도 하는 등 유기적 통합이 잘 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SURF-JPL’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학부생들이 JPL 연구원과 다양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으며 JPL은 이 같은 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휴대폰 카메라 초기 모델인 ‘저전력 능동 화소 센서(CMOS APS)’와 위성항법시스템(GPS) 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1931년 설립된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UC 버클리가 미국 에너지부의 용역 과제 등을 받아 운영, 예산만 연 15억 달러 수준이다. 로런스버클리연구소 소속 연구원 200여 명은 UC 버클리 교수를 겸임 중이라 사실상 UC 버클리 자체가 거대한 연구소라는 평가도 받는다. 로런스버클리연구소는 ‘학부생 연구소 인턴십 프로그램(SULI)’을 통해 학생들이 첨단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연구소는 이 같은 연구 인프라를 기반으로 ‘저비용 휴대용 정수 시스템(UV Waterworks)’이나 스마트 전력망 통신 표준인 ‘오픈 ADR’ 등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대 또한 ‘미래 초융합 기초과학기술원(NEXST 랩)’ 설립을 추진하며 이 같은 미국 모델을 벤치마킹할 방침이지만 정부의 협조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우리나라 또한 특정 부처가 ‘장기적 국가 전략 임무’를 정의하고 이를 전담 수행할 수 있는 대학 기반의 독립연구소 모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국방·에너지·우주 등 특정 전략 기술 분야에서 안정적 연구개발(R&D) 예산을 보장하고 민간 기업과의 비경쟁 원칙을 통해 공익과 혁신을 추구하는 기관을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R&D와 기술 상용화 사이에서 예산 부족 등으로 발생하는 ‘죽음의 계곡’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소는 표준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상업화는 ‘기술이전 전담 조직(TTO)’에 맡기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며 “로런스버클리연구소처럼 연구 성과를 가능한 한 널리 공개해 다양한 기업이 이를 바탕으로 혁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NEXST 랩’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유재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은 “로런스버클리 연구소의 ‘겸임 교수 제도’를 벤치마킹해 한국 출연연 연구원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또 대학 교수가 출연연 연구 과제에 참여하는 모델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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