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美는 연구소 공동운영, 日은 지역특화…대학 경쟁력 키웠다

■첨단산업전쟁 위기의 대학 - <2>사라진 글로벌 전략

정부 전폭 지원에 창의성 결합

연구분야서 독보적 지위에 올라

첨단 무기 등 국가경쟁력 강화

日은 지역특화 대학에 55억엔 지원

"韓도 대학 기반 연구소 도입하고

겸임교수제도 등 적극 벤치마킹

'글로벌 톱10' 대학 육성 힘써야"





‘매사추세츠공대(MIT), 캘리포니아 공대, UC 버클리.’

이들 대학교는 ‘2026년 더(THE) 세계대학 랭킹’에서 각각 2위, 7위, 9위를 기록한 세계적 대학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미국 연방정부와 함께 ‘연방정부 지원 연구개발센터(FFRDC)’를 운영 중인 대학이자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연구원의 창의성을 결합해 연구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린 대학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글로벌 대학이 부재한 우리나라 또한 세계적 대학 육성을 위해 미국의 대학 성장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대학은 ‘톱100’에 서울대(58위), 한국과학기술대(KAIST·70위), 연세대(86위), 성균관대(87위) 등이 이름을 올렸지만 글로벌 대학과의 연구 역량 및 관련 인프라 격차가 상당하다. 교육계에서는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와 관련해 “글로벌 10위 안에 들어갈 한국형 MIT 1개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할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서울대 자연대의 ‘미국 대학-연방 연구소 모델 심층 비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정부 부처가 특정 대학과 연구개발센터를 공동 수립하는 방식으로 대학의 연구 역량은 물론 국가 경쟁력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MIT 링컨랩’은 미국 국방부(현 전쟁부)가 1951년 미국 공군 방어시스템 개선을 위해 설립했으며 MIT의 연구 역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1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국방부는 링컨랩에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장기 용역을 맡기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 중이며 링컨랩은 올 4월 미국 공군과 12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링컨랩에는 무려 44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 예산만 10억 1000만 달러 수준이다.

링컨랩의 운영 방식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링컨랩 기술 전문가들은 학부생 대상의 공학 강좌를 개설해 각종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으며 학부생 대상 유급 인턴십 프로그램 ‘UROP’를 통해 학생의 사업화 역량 제고에도 애쓰고 있다. 링컨랩 연구원이 MIT 총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연구 자율성 제고를 위한 장치도 주목할 부분이다. MIT와 링컨랩이 공동벤처 형태로 설립한 스타트업 육성 조직 ‘비버웍스(Beaver Works)’는 자율 잠수정, 드론, 초소형 위성 등을 만들었으며 링컨랩은 이 같은 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100개 이상의 ‘스핀아웃’ 기업을 배출했다.

1936년 설립된 ‘제트추진연구소(JPL)’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후원하며 캘리포니아 공대가 관리를 담당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예산 규모는 연구 프로젝트 등에 따라 매년 바뀌지만 2021년의 경우 24억 달러에 달하기도 했다. JPL 직원은 사실상 캘리포니아 공대 직원으로 분류되며 JPL 연구원이 캘리포니아 공대 겸임 교수를 맡기도 하는 등 유기적 통합이 잘 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SURF-JPL’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학부생들이 JPL 연구원과 다양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으며 JPL은 이 같은 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휴대폰 카메라 초기 모델인 ‘저전력 능동 화소 센서(CMOS APS)’와 위성항법시스템(GPS) 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1931년 설립된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UC 버클리가 미국 에너지부의 용역 과제 등을 받아 운영, 예산만 연 15억 달러 수준이다. 로런스버클리연구소 소속 연구원 200여 명은 UC 버클리 교수를 겸임 중이라 사실상 UC 버클리 자체가 거대한 연구소라는 평가도 받는다. 로런스버클리연구소는 ‘학부생 연구소 인턴십 프로그램(SULI)’을 통해 학생들이 첨단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연구소는 이 같은 연구 인프라를 기반으로 ‘저비용 휴대용 정수 시스템(UV Waterworks)’이나 스마트 전력망 통신 표준인 ‘오픈 ADR’ 등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대 또한 ‘미래 초융합 기초과학기술원(NEXST 랩)’ 설립을 추진하며 이 같은 미국 모델을 벤치마킹할 방침이지만 정부의 협조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우리나라 또한 특정 부처가 ‘장기적 국가 전략 임무’를 정의하고 이를 전담 수행할 수 있는 대학 기반의 독립연구소 모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국방·에너지·우주 등 특정 전략 기술 분야에서 안정적 연구개발(R&D) 예산을 보장하고 민간 기업과의 비경쟁 원칙을 통해 공익과 혁신을 추구하는 기관을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R&D와 기술 상용화 사이에서 예산 부족 등으로 발생하는 ‘죽음의 계곡’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소는 표준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상업화는 ‘기술이전 전담 조직(TTO)’에 맡기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며 “로런스버클리연구소처럼 연구 성과를 가능한 한 널리 공개해 다양한 기업이 이를 바탕으로 혁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NEXST 랩’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유재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은 “로런스버클리 연구소의 ‘겸임 교수 제도’를 벤치마킹해 한국 출연연 연구원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또 대학 교수가 출연연 연구 과제에 참여하는 모델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日대학은 지역 특화 못하면 존속 못 해"…'일본판'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고베대에서 운영 중인 '바이오제조공공연구거점' 사진. 사진 제공=고베대고베대에서 운영 중인 '바이오제조공공연구거점' 사진. 사진 제공=고베대



“일본의 지역 대학은 ‘지역핵심·특색 있는 연구대학강화촉진사업(J-PEAKS)’에 선정되지 못하면 존속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카야마대 관계자)

가파른 고령화와 지역 소멸 등 한국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은 이른바 일본판 ‘글로컬대학30·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인 ‘J-PEAKS’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J-PEAKS에 선정된 간사이권 대학들은 입을 모아 “지역 쇠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중심으로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며 지역 대학이 지역 소멸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본 고베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데라모토 도키야스 고베대 학술연구진흥원 선임 연구개발(R&D) 매니저는 “고베대는 기존 바이오·의료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활용해 시와 긴밀히 협력하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2년에 걸쳐 J-PEAKS 대상 대학 25곳을 선정했다. 이는 전국 810개 종합대학의 3.1%에 해당한다. 선정 기준으로는 각 대학이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보유하거나 지역 내 핵심 거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작용했다. 각 대학은 5년간 55억 엔(약 514억 원)을 지원받고 향후 10년간 발전 전략을 이행해야 한다.

이 중 일본 THE 대학 순위 15위에 꼽히는 고베대의 지역 협력은 인공섬 ‘포트아일랜드’에 조성된 의료산업도시(KBIC)를 중점으로 이뤄진다. 미쓰비시·JGC홀딩스 등 일본 주요 기업이 입주한 KBIC에서 고베대는 산학연 협력을 통한 인재 파이프라인 구축에 나선다.

J-PEAKS 사업의 또 다른 특징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대학을 만들기 위한 ‘국제탁월연구대학’ 사업과 투트랙 전략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데라모토 매니저는 “모두 하버드대 같은 톱이 될 수는 없지만 바이오가 강한 고베대, 반도체가 강한 히로시마대처럼 확고한 지역 특성화를 통해 ‘강한 대학’을 만드는 게 J-PEAKS의 의의”라고 설명했다.

THE 대학 순위 20위인 오카야마대는 농업·태양광 에너지 분야에 특화돼 학내 연구 특구를 만들고 우수 연구자 10명에게 우대 정책을 진행한다. 특구장은 일본 내 노벨상 후보로 유력 거론되는 광합성 연구 권위자 선젠런 교수가 맡았다. 오카야마대는 일본 디지털 특화 지구인 오카야마 내 ‘기비추오초’에서도 디지털 실험을 진행하며 인근 대학들과 함께 지역 상생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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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지역대학 활성화가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각종 연구 결과로도 입증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지역대학의 지역경제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전북대의 지역생산유발효과는 4760억 원에 달하며 고용 효과는 5096명으로 추정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또한 시카고 광역경제권에 미치는 효과가 5억 500만 달러(약 7300억 원)로 분석됐으며 고용 효과는 1만 447명에 달했다.


양철민 기자·고베·오카야마=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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