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에 이어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자인 피터 틸도 보유하고 있던 엔비디아 주식 전량을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인공지능(AI) 투자가 지나치게 과열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큰손’들이 앞다퉈 엔비디아 주식 처분에 나선 것이다. 시장의 관심은 19일(현지 시간) 엔비디아가 내놓을 3분기 실적에 모아지는 분위기다.
17일 인베스팅닷컴 등에 따르면 틸이 운영하는 헤지펀드 틸매크로는 보유 중이던 엔비디아 주식 53만 7742주를 올 7~9월 총 3개월에 걸쳐 모두 매도했다. 매도 완료 시점인 9월 30일 엔비디아 종가(186.58달러) 기준으로 약 1억 33만 달러(약 1470억 318만 원) 규모다. 간편결제 회사 페이팔, 소프트웨어 업체 팰런티어를 공동 창업한 틸은 미국 테크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엔비디아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는 소식에 시장이 술렁였다. 소프트뱅크가 앞서 지난달 갖고 있던 총 53억 3000만 달러(약 7조 8833억 원) 규모의 엔비디아 주식 전부를 판 데 이어 나온 매도 소식인 만큼 시장의 충격은 컸다. 블룸버그통신은 “엔비디아를 세계 최고 기업으로 거듭나게 한 AI 열풍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 주식 매도 움직임이 이어졌다”고 짚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견한 공매도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유효 수명을 과도하게 늘려 감가상각 기간을 연장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불안 요소가 더해진 셈이다.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186.60 달러를 기록해 엔비디아를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5조 달러 기업으로 만들었던 고점(10월 29일, 207.04달러) 대비 10% 가까이 낮아졌다.
시장에서는 AI 거품 우려가 커지는 양상이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헤지펀드인 사바캐피털매니지먼트가 최근 몇 달 동안 빅테크들에 신용부도스와프(CDS)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다고 전했다. 오라클과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아마존, 구글 등 AI 인프라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빅테크가 대거 포함됐다. 로이터는 “AI 기업의 급격한 가치 급등과 부채 부담 증가에 대비해 금융 업계 사이에서 (위험에 대비한) 헤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금융권이 AI 투자가 손실을 입을 경우를 대비해 위험을 회피할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도이체방크는 빅테크에 대출해주면서 리스크를 방어할 합성위험이전(SRT) 거래와 AI 관련 주식의 공매도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를 두고 과도한 반응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단적으로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 주식을 전량 처분한 이유가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에 ‘올인’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틸매크로 역시 엔비디아 주식은 팔았지만 애플(7만 9181주)과 MS(4만 9000주) 등 AI 인프라 투자를 늘리는 다른 테크 기업의 주식은 새로 사들였다. 큰손들이 ‘AI 손절’이 아닌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섰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실제로 블룸버그가 909개 헤지펀드의 공시를 분석한 결과 엔비디아 투자를 늘린 펀드도 많았다. 올 3분기 기준 161개 펀드는 엔비디아 투자를 확대했고 160개 펀드는 투자를 줄였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AI 산업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엔비디아 3분기 실적 발표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발표를 앞두고 지난달 워싱턴에서 진행된 개발자 행사(GTC)에서 올해와 내년을 합쳐 모두 5000억 달러 규모의 AI 칩 주문을 확보한 상태라고 밝혔다. 다만 시장에서는 9월 오픈AI와 맺은 1000억 달러 규모의 거래가 포함된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내놓고 있다. 이 거래는 엔비디아 투자금으로 오픈AI가 엔비디아 GPU를 구매하는 ‘자전 거래’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