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특별시가 운영하는 ‘서울시보’ 제4103호에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 도면’ 고시가 실렸다. 내용은 무려 29쪽에 걸쳐 있는데 핵심은 종묘 앞 재개발 지역인 세운4구역의 건축 가능 최고 높이를 142m로 상향 조정한다는 것이다. 한 달 가까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종묘 경관 논란의 시작이었다.
서울시는 이러한 중요한 내용을 발표하면서 그 흔한 언론 보도 자료 하나 내놓지 않았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이달 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자리에서 “서울시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간에 기습적으로 39층, 40층을 올린다고 변경 고시를 냈다”고 분노한 이유다.
도심의 다른 재개발 이슈와 마찬가지로 종묘 앞 고층 건물 문제도 오래된 논란거리다. 종묘가 1995년 국내 1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주위 개발에 제한이 걸렸다. 개발이익을 노렸던 인근 토지주들로서는 불편한 일이었다. 낙후된 세운상가 주변의 부흥을 위해 서울시는 2006년 세운4구역과 그 일대를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다.
이후 10여 년에 걸친 서울시와 토지주, 문화유산(문화재) 당국 등의 논쟁과 협의, 재검토를 거쳐서 마침내 모두가 동의한, 적어도 반대는 없었던 방안이 도출됐고 2018년 정식 ‘사업시행 인가’가 나왔다. 당시 계획상으로 최고 건물 높이가 72m였다. 층수로는 20층 정도가 된다.
하지만 서울시장이 박원순에서 오세훈으로 교체되면서 정책은 다시 흔들렸다. 오 시장은 토지주 및 개발론자들의 입장을 더 반영해서 건물 최고 높이를 올리고자 했고 종묘를 관리하는 국가유산청은 이에 반대했다. 서울시가 국가유산청에 변경안을 협의 요청한 것이 2023년 10월이다. 그리고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올해 10월 말 변경 고시를 발표했다.
협의도 없었던 고시에 국가유산청과 상위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반발했음은 당연한 듯하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7일 종묘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법률 제·개정을 포함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 종묘를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10일 김민석 국무총리도 종묘를 방문해 서울시의 조치를 비판했다.
국가유산청의 논리는 서울시가 계획안을 새로 변경했으면 변경안에 대한 평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영향 평가’를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미 국내 개발 사업에 환경영향평가·교통영향평가 등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유네스코도 최근 직접 공문을 보내와 이를 뒷받침했다. 서울시와 토지주들의 생각은 물론 다르다. 낙후돼 있는 종로의 개발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서울 시내 다른 동네는 모두 수백 m 초고층으로 개발되는데 4대문 안 종묘 앞이라고 안 될 것이 뭐냐는 불만이 깔려 있다.
종묘 경관 논란은 다른 지역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에서는 경복궁·창덕궁으로 둘러싸인 종로구 서촌과 북촌, 풍납토성이 있는 송파구 등을 포함해 지방에 있는 문화유산 소재 지역도 이번 논란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종묘에서 규제가 풀리면 다른 지역 또한 도미노처럼 풀릴 가능성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적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세력 대결의 문제는 아니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역 주민, 문화유산 관련자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결론이 도출돼야 한다. 보존과 개발의 조화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상황에 대한 평가가 아주 중요하다. 즉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평가가 먼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 듯하다. 서울시가 이미 자체 평가를 했고 그 결과는 ‘초고층 개발로도 종묘에 영향 없음’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서울시 공무원과 토지주 외에 누구라도 인정하기 힘들다.
제3자의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서울시가 다른 제3의 평가 기관을 유치할 수 없다면 유네스코의 평가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미 20년이 흘렀고 또다시 얼마가 걸릴지도 모르는 유네스코 평가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계획 변경을 원하는 사람이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